각양각색 인물들이 팀을 꾸려 ‘한탕’의 절도를 저지르는 영화 ‘타워 하이스트’(Tower Heist)의 뼈대 자체는 그리 참신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좀처럼 못 보던 흥미 있는 설정 하나가 있어 독특합니다. ‘서민들이 똘똘 뭉쳐 부자(富者)의 집을 턴다’는 부분입니다.
이 부자는 없는 사람들의 피 같은 돈을 사기쳐 떼어먹은 나쁜 부자입니다. 억울하게 거의 모든 재산을 빼앗긴 서민들은 분노한 끝에 내 재산 되찾겠다며 나섭니다. 주인공들은 돈에 눈먼 잡범이 아니라 ‘의적(義賊)’이고 로빈 훗인 셈이죠.
착한 서민들과 추악한 부자의 대결은 세계 최고 수준의 호화판 아파트인 뉴욕의 ‘더 타워’라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출입문 열어 주는 벨보이, 방 청소해 주는 메이드로부터 빌딩 관리를 책임지는 지배인 조시(벤 스틸러)에 이르기까지, 이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기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은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이 빌딩 펜트하우스에 사는 아더 쇼라라는 부자에게 맡겨 투자하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쇼라는 인물이 사기꾼이었습니다. 전 재산을 날리게 된 거죠. 그런데 분노에 떨던 그들에게 복음 같은 정보가 입수됩니다. 범인 쇼가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현금 2000만 달러 쯤을 숨겨놓은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떼인 돈 되찾아 오자”는 매니저 조시의 생각에 하나 둘씩 공감합니다. 이들은 마침내 쇼가 살고 있는 빌딩 펜트하우스의 금고를 털자고 의기투합합니다. “쇠스랑을 들고 성을 습격하던 옛 폭도들처럼 쳐들어 가자”고 이들은 말합니다. 도둑질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이 방면 ‘전문가’인 전과자 슬라이드(에디 머피)를 ‘영입’하여 지도를 받으며 마침내 펜트하우스에 침입합니다.
사실 영화가 아니라면 이런 복수극을 어떻게 벌여 보겠습니까. 극중 사기꾼은 모든 이의 공분을 부를 만큼 더티합니다. 월 스트리트의 ’큰 손‘ 행세를 하며 사기로 서민들을 등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며, "너희 같은 일용직 근로자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지"라는 말이나 지껄이는 아더 쇼는 추악한 부자의 전형입니다.
빌딩 옥상의 전용 풀에서 수영을 하는 아더 쇼의 호사스런 삶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사기 피해자들의 비참한 삶은 관객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전재산 7만3000달러를 날린 도어맨 레스터는 목숨을 끊으려고 전철에 뛰어들었다가 미수에 그칩니다. “나는 몇 십 년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고 닫아 왔어. 그 사람들도 직접 문을 열 수 있는데 말야…. ”라는 그의 탄식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타워 하이스트‘의 상황은 관객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영화는 분노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기려는 판타지들을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가령, 매니저 조시는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 펜트하우스로 달려 올라가 아더 쇼에게 따지다가 방안의 골프채를 집어듭니다. 명배우 스티브 매퀸이 가졌던 모델이고 가격이 200만 달러가 넘는다는 ‘1963년형 페라리 250GT루소’ 스포츠카의 유리창들을 산산조각 박살내는 대목에선 파열음 하나하나가 짜릿함을 안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에선 재미의 핵심이 카타르시스에서 유머와 액션으로 옮아갑니다.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갖춘 빌딩을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이 털려고 덤비는 데서부터 코미디는 시작됩니다. 어린이용 레고 블록으로 건물 모형을 만들어 놓고 범죄를 모의하는 모습부터 우스꽝스럽기 짝없습니다. 그래도 이 ‘드림 팀’ 멤버들이 모두 빌딩 직원들이기에, 입주자들 숟가락 숫자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빌딩 사정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비장의 무기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못 가진 자들의 반란이라는 묵직한 테마를 끌여들였지만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악당을 응징하는 큰 줄기는 유지하면서도 황당한 코미디의 오락적 재미에 치중합니다. 분노에 떨어야할 아픈 문제인데도 웃음이란 진통제가 관객들 신경을 이완시킵니다.
자신은 표정 한 번 바꾸지 않으면서 사람을 웃기는 벤 스틸러, 상소리를 섞어 가며 단어들을 입으로 난사하는 듯 속사포로 지껄이는 에디 머피 등 개성 가득한 캐릭터들이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 줍니다. ‘다이 하드’ 처럼 고층 빌딩 엘리베이터 통로를 누비고, 수십 층 건물 외벽에 아찔하게 매달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과 모험도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전경을 180도로 볼 수 있는 초호화 아파트 내부의 묘사처럼, 탐욕스런 부자들을 경멸하면서도,부자를 선망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정신도 엿보입니다.
사실 ‘타워 하이스트’는 엄청난 스토리나 탄탄한 짜임새가 있는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시리즈의 브랫 레트너가 감독을 맡았지만 ‘프리즌 브레이크’급의 두뇌게임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따분하지 않은 건 코미디 장르의 본분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입장료 받은 만큼은 관객들을 위안하는 이 영화엔 미국 오락영화의 완성도와 한계가 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