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김모(47)씨가 포상금이 적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김씨는 노무현 정권이 적발한 첫 ‘직파간첩’ 정경학(53)을 유인한 공로로 국가정보원장 표창장과 1500만원을 받았다.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46부(재판장 강성국)는 “김씨가 ‘간첩 검거에 따른 국가가 얻은 이익은 200억 원에 달한다며 일부인 43억 원을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간첩 정경학을 군내로 유인해 체포하는데 기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국가가 얻은 안보이익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6년 전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기업 출신 김씨는 직장을 그만 두고 필리핀 이주를 결심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취업·생활 정보를 구하는 글을 올렸고, 20명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지인을 통해 '켈톤 가르시아 오르테가'(켈톤) 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켈톤'은 바로 북한이 필리핀에 직접 파견한 간첩 정경학이었다.
동남아인처럼 생긴 정경학은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영어·중국어·태국어·필리핀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그는 북한 공작원으로서 수차례 국내에 들어와 국가 주요시설을 촬영하고 내국인을 포섭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A씨와 B씨가 김씨를 찾아와 "'켈톤'은 중요 인물이다. 한국으로 데려오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나랏일이라면 돕겠다"고 했다.
'켈톤'과 친분을 쌓은 김씨는 이듬해인 2006년 7월 그를 유인해 귀국했다. 김씨와 몰래 접촉을 계속하던 국정원 직원들은 숙소를 덮쳐 '켈톤'을 구속했다. 그해 8월 21일 국정원과 검찰은 '직파간첩 정경학 사건'을 발표했지만 이면에서 수고를 한 김씨의 역할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해 말 정경학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A, B 등 4명은 간첩 검거 공로로 포상금 7000만원을 받아 나눠 가졌고 다음해 보국훈장, 보국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을 각각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공작 기간' 100만원씩 여섯 차례 받은 600만원과 포상금 수령 직후 국정원 측이 준 사례금 900만원 등 1500만원과 '국정원장 표창'이 전부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삯 250만원도 그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보안유공자 상금 지급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김씨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최고 1억원이다. (간첩 신고 포상금은 현재 5억원으로 인상됐다.) 김씨는 국정원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안 된다'는 국가정보원법 11조를 어기고 자신을 이용해 부당 이득(간첩 검거)을 올렸으니 마땅히 자신에게 그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가가 얻은 이익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200억원에 달한다"며 "일부인 43억여원을 지연손해금으로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국정원 측은 "안전을 위해 김씨의 존재를 공개하지 않았고 공(功)을 가로챈 게 아니다"라면서도 "당시 정권이 간첩 사건을 홀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김병철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는 "국가 안보이익은 무형적, 추상적인 이익이므로 민사소송을 통해 그 이익의 일부를 나눠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게 판결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