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과장.

"묻지 마 살인으로 4명을 죽인 용의자를 처음 본 날이었어요. 유치장에서 봤는데 덩치가 크고 기(氣)가 세더라고요.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도 고개를 빳빳이 들었죠. 눈싸움한 지 2분쯤 되니까 그 친구가 '밥이나 한 그릇 사주시면 되는데…' 하더군요. 싸우려는 게 아니라 정(情)에 굶주린 사람이었어요"

뛰는 살인범 위에 나는 범죄심리학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강덕지(60) 과장의 책상 서랍엔 편지가 500여통 들어 있다. 살인, 연쇄 성폭행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고 수감 중인 죄수들이 교도소에서 보내온 것들이다. 이유 없이 4명을 죽여 사형을 선고받은 40대 백모씨도 수감 후 10년간 꾸준히 그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백씨는 편지에 그를 '형님'이라 썼다. 살인죄로 수감된 20대 중엔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여성도 있다.

"조사하면서 스킨십을 많이 했습니다. 어쨌건 소외된 사람들이니까요.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나 봐요. 10년이나 알고 지내도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남이고, 1분을 만나도 마음이 통했다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범죄심리학자이다. 1981년 국과수에 온 이후 범죄심리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고, 1999년 최면수사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2000년 국과수가 범죄행동분석팀을 조직했을 때도 장(長)을 맡으면서 현장 선구자로 나섰다.

그는 심리분석·최면조사·거짓말탐지기 전문가 6명과 일한다. 무려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서울 서남부에서 부녀자 13명을 살해한 정남규 등 30년간 그의 손을 거친 범죄자가 1000명이 넘는다.

최면수사는 피해자나 목격자가 최면 상태에서 사건 당시 상황을 말로 재현케 하는 기법이다.

강 과장은 "사람이 너무 놀라면 순간적으로 기억을 잃을 수 있다"며 "편안한 상태에서 뇌파 움직임을 보며 질문하면 당시 정황이 그림처럼 풀려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용의자의 인상을 기억해내면 그가 몽타주로 만들어 수사 경찰에 넘겼고, 이것이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곤 했다.

강 과장은 다음 달 국과수에서 정년 퇴임한다. 그는 숱한 범죄자를 만나고 대화하고 연구하며 깨달은 것이 교육의 중요성이라고 했다. "범인을 만드는 95%는 환경이죠. 선천적으로 악하게 태어난 사람은 5%에 불과하다고 봐요. 범죄는 대체로 충동적으로 일어나요. 어릴 때부터 참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