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6시 CBS 음악 FM에서는 한결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안정감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리는 말투가 인상적인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프로듀서 겸 디제이(DJ) 배미향(56)이다. 그의 '독특하고 묘한' 음성은 특히 퇴근길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가 15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뒤늦은 방송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정확히 따지면 올해는 방송 11년째로 지난해가 10주년이었지만 시기를 놓쳐 지금에야 팬들을 위한 기념행사를 갖게 됐다고 한다. 이번 콘서트에는 바리톤 김동규, 가수 현미·김세환·이은미, 뮤지컬 배우 박해미 등이 출연한다.
'배미향의 저녁스케치'는 동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로 알려져 있다. 청취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도 하고,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나기도 해 '라디오는 사랑을 싣고'라는 별명도 얻었다. 회원 180명이 참여하고 있는 팬카페도 7년째 운영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미향에게 어떻게 방송생활을 시작했는지부터 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75년에 대구의 음악감상실 '올림퍼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마침 여자 디제이 한 명이 그만둬서 대타로 나서게 됐죠. 그러던 중 대구 CBS 라디오에서 올림퍼스로 공개방송을 나왔는데 남자 디제이와 함께 공동 진행을 맡게 됐어요. 그때 내 목소리를 들은 라디오 국장이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라디오 진행을 맡아달라'고 권유해 CBS에 특채됐습니다."
'배미향의…'를 맡은 건 1999년 CBS의 노사 분규가 계기가 됐다. "85년에 서울 CBS로 옮겨 라디오 진행을 그만두고 인사팀장으로 일하고 있었죠. 직원들이 파업하고 일을 안 하니 간부급들이 차출됐고, 그때 저는 '저녁스케치'를 임시로 맡았던 거죠." 9개월간 파업이 끝나고 본래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복귀했지만 청취자들은 이미 배미향에 빠져 있었다. 프로그램 게시판에 '배미향을 돌려달라'는 청취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단다. 결국 2000년 9월 개편에서 '저녁스케치' 마이크를 잡게 됐다.
그는 프로그램의 특징으로 게스트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청취자들이 음악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은 외국 유명 아티스트가 내한만 하면 출연시키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수선하기만 할 뿐이죠. 통역해야지, 음악 틀어야지 정신이 없어요."
"라디오 진행을 위해 불어와 스페인어도 배웠다"고 한다. "팝과 월드뮤직 위주로 선곡해 샹송이나 칸초네를 들려 드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분명히 불어나 스페인어를 전공한 청취자도 있을 텐데 어설픈 발음으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죠." "곡을 해석해줄 수는 없어도 제목의 뜻은 전달해 줄 수 있어야겠기에 공부를 시작했다"는 거다.
배미향은 높은 청취율의 비결로 '사담(私談) 금지'를 들었다. "청취자들이 내 나이와 결혼 여부를 두고 저녁 내기를 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 정도로 방송에선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 않아요. 음악을 들으면서 사연에 공감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느낄 수 있으면 그뿐, 내가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어요. 나머지는 다 군더더기일 뿐이죠."
배미향은 "올해로 라디오 진행이 36년째"라며 "청취자들이 음악과 사연을 통해 추억을 회상하고 삶을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