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후 서울남부지방법원 등기과에서 일했던 20대 공익근무요원들에게 부동산 등기권리증은 '현금 뭉치'나 마찬가지였다. 등기권리증에 붙어 있는 인지(印紙)와 증지(證紙)만 떼면 돈이 생겼다. 법원이나 동사무소 등에서 부동산 등기권리증 등의 서류를 발급할 때 수수료나 세금으로 내는 우표 모양의 인지·증지가 노다지가 된 것이다.

침을 발라 소인 자국을 지워서 법무사 사무소에 팔아넘기는 단순한 수법으로 4년 동안 1억8000여만원을 챙겼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고급 룸살롱 유흥비로, 주식 투자비로 탕진했다.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이런 비리를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6부는 이런 혐의로 남부지방법원 소속 전 공익근무요원 정모(26)씨와 법무사 사무장 양모(41)씨를 각각 특수절도와 장물취득 혐의로 구속했다. 나머지 공익근무요원 7명과 법무사 사무장 2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대학원 유학을 간다"며 미국으로 달아난 전 공익요원 유모(25)씨도 구속할 방침이다.

이 사건은 아르헨티나에서 2년간 유학한 유모(35)씨가 지난 2005년 5월 공익요원으로 등기과에 배치된 것이 발단이 됐다. 유씨는 이곳에서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등기권리증'을 발급해주고, 유효기간이 끝난 등기권리증을 폐기 처분하는 일을 담당했다. 2006년 7월, 서울 양천구의 한 법무사 사무소장 양씨가 유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폐기 처분하는 등기권리증의 인지를 떼내서 오면 돈을 주겠다. 소인 자국이 없고 깨끗한 것은 정가의 70%, 소인 자국이 남은 것은 반값에 사겠다"고 했다.

유씨는 동료 공익요원 이모(26)씨와 함께 폐기 직전 등기권리증의 인지를 떼어내 양씨에게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유씨는 1년 동안 1915만원을 챙겼다. 양씨는 이렇게 수집한 인지와 증지 가격에 10%를 더 얹어 도매 거래 업자에게 넘겼다.

2007년 7월 공익근무 기간이 끝난 유씨는 아예 법무사 사무소에 취직, 등기과에 근무하는 후임 공익요원에게 인지를 빼돌리는 수법을 가르치며 범행을 이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2006년 이후 남부지법 등기과에 근무했던 공익요원 6명이 모두 범행에 가담했고, 옆 사무실인 민사과 공익요원 2명도 2008년부터 가담했다. 이들이 4년간 빼돌린 인지·증지 가격은 2억5000만원, 챙긴 돈은 1억8200만원이었다. 법원 누구도 공익요원들의 범행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들의 범행은 '돈 욕심' 때문에 막을 내렸다. 공익요원들이 돈을 더 벌어 볼 욕심에 폐기 직전의 등기권리증뿐 아니라, 폐기 시점이 1~2년씩 남은 등기권리증에서도 인지를 떼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법원 등기과 직원이 창고를 정리하면서 폐기 기간이 남은 등기권리증에서 인지와 증지가 모조리 사라진 것을 발견해 검찰에 신고하면서 이들의 범행은 막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인지·증지를 빼돌린 공익요원 중에는 명문대 재학생과 부유층 자녀도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지난달부터 등기권리증에 인지 대신 영수증을 발급하고, 증지에는 펀치로 구멍을 뚫어 재활용을 막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