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심야에 벌어진 인천 남동구 길병원 장례식장 앞 유혈 난투극은 조직폭력배에 무력한 대한민국 경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민들의 112 신고는 묵살하고, 경찰청에는 허위, 축소 보고를 하는 등 치안 당국으로서 역할이 실종됐다. 경찰청 감찰 결과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18분 인천 남동경찰서에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이 장례식장을 막고 있어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시민의 112 신고가 처음 접수됐다. 당시 장례식장 앞에는 인천의 조직폭력배 '크라운파' 조직원 100여명이 몰려 있었다.
◇경찰 "조폭도 장례식장 손님"
경찰은 신고가 들어오자 조폭 전담팀 대신 구월지구대 순찰차량을 현장에 보냈다. 신고 7분 후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조폭이 몇 명 모여 있지만, 충돌은 없다"고 지구대에 보고했다. 지구대 박모(53) 순찰팀장은 "조직폭력배끼리 싸우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마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를 받은 현장 경찰은 '조폭도 장례식장 손님'이라는 이유로 "너무 몰려다니며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주지는 마라"고 계도 활동을 벌였다고 경찰청 감찰실 관계자는 밝혔다.
이어 10시 50분쯤 크라운파에 신간석파 조직원까지 가세해 총 130여명이 장례식장 앞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조직원 이탈 문제로 승강이를 벌이며 충돌 직전까지 갔다. 남동경찰서는 10시 55분 이런 신고를 받았지만 42분이나 지난 11시 37분이 돼서야 강력팀 형사 5명과 기동타격대, 방범순찰대 등 70여명을 출동시켰다. 오후 11시 50분쯤 경찰 70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간석파 조직원 김모(34)씨가 신간석파에서 크라운파로 소속을 바꾼 조직원 이모(34)씨의 왼쪽 어깨와 허벅지를 흉기로 2~3차례 찔렀다.
경찰은 유혈사태가 발생한 뒤에야 검거에 나서 22일 새벽 0시 45분에 흉기를 휘두른 범인을 검거했다. 남동경찰서는 인천지방경찰청과 경찰청 본청에는 "조직폭력배의 충돌이 발생해 칼부림이 있었다"는 내용만 보고했을 뿐 그 현장을 경찰 70여명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내용은 누락했다.
◇기강 해이, 비리 위험 수위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과거 아파트 관리업체 용역 직원과 현 아파트 관리업체 용역 직원, 주민 등 500여명이 서로 욕설을 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정보과장은 '평온한 상태'라고 서장에게 허위 보고를 했고, 군포경찰서장은 사건 발생 4시간 40분이 돼서야 현장에 출동했다.
최근 들어 비리 사건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경찰관들이 변사 시신을 특정 장례식장에 몰아서 넘기고 1구당 30여만원씩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적발돼 서울 남부지검이 수사에 나선 상태다. 24일에는 서울중앙지검이 동료 경찰에게 뇌물을 제공한 경기지방경찰청 산하의 파출소 소속 경찰관 유모(44)씨를 구속 기소했다.
유씨는 지난 8월 개인 정보 유출, 음주 추태 행위로 청문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게 되자, "감사를 무마해 달라"며 동료 경찰관 등에게 현금 600만원과 향응을 제공하고, 로비에 실패하자 돈을 돌려달라고 협박했다.
사건 축소 대가로 경찰이 돈을 받아 챙긴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2009년 9월 발생한 집단 폭행 사건을 단순 상해 사건으로 축소 처리해 주는 대가로 가해자 임모(48)씨 등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아 챙긴 전(前)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 이모(42) 경사에 대해 24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경위급 경찰관은 "요즘 솔직히 위태위태하다"면서 "삼류 조폭도 막지 못하는데 국민들이 경찰을 믿겠느냐"고 말했다.
[[Snapshot] 무기력하고 기강 무너지고 비리 연루…경찰 관리대상 조직폭력배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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