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가 2013년부터 사용할 중·고 역사 교과서의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촉발된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역사 교육이라는 창(窓)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짚어보는 여러 가지 이슈를 던졌다. 논쟁의 시작은 8·15 광복 이후 우리 정치사를 서술하는 기본틀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할 것인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할 것인지였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할 정치체제와 헌정(憲政)질서의 문제로 연결되면서 과거를 보는 사관(史觀)의 대립을 넘어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담론(談論) 투쟁으로 확대됐다.
이 논쟁이 초기에 혼란스럽게 전개된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공산국가의 인민민주주의나 파시즘·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한 반면, '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냉전기에는 반공(反共)을 추구했고 지금은 시장의 절대적 자유를 외치는 극우(極右)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다. 양자의 시각 차이는 자본주의와 의회주의 틀 안에서 활동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에 포함되는지를 놓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하면 사회민주주의를 배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 학자들이 사회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한 부분이라는 데 동의함으로써 이런 우려는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그러면 이제 논쟁은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논쟁 과정에서 우리 헌정의 중심 개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이에 대한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전문·前文),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고 돼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대한민국의 현재는 물론 통일 이후 미래에도 정체성으로 규정돼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으로 정의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요소로 꼽히는 것들과 일치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자유민주적'이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는 뜻이라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민주주의'라는 틀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규정이 민주주의의 위축을 가져왔다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 규정이 남북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는 최근 한 잡지 기고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외곬의 지침에 얽매여 있기에는 너무나 모순투성이의 상황에 서 있다. 헌법 원리로부터 좀 더 유연한 행동원리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일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일부 항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기로 했다.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서술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입장이 이처럼 날카롭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그런 수정은 또다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앞으로 역사 교과서 서술과 검정 과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무엇이냐를 놓고 논란이 이어질 것 같다.
입력 2011.10.20. 23:28업데이트 2011.10.2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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