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영국. 시인(詩人) 윌리엄 모리스(Morris·1834~1896)는 기계로 찍어낸 대량 생산물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싫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손으로 만든 정교하고 아름다운 일상용품에 대해 향수를 느꼈던 그는 수공예의 부흥을 주창하며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s Movement)'을 펼친다.
30일까지 충북 청주시 내덕2동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열리는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는 모리스의 정신을 계승한 세계 65개국 3200여명의 예술가들이 50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로 7회째인 비엔날레의 슬로건은 '유용지물(有用之物)'. 정준모 총감독은 "'예쁘면서도 쓸모 있는 것'이라는 공예의 본질을 부각시키려 정한 슬로건"이라고 말했다.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과 가까이
이번 비엔날레는 생활용품을 통해 낯선 현대미술가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로 꼽히는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는 진짜 나비를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을 즐겨 한다. 비엔날레 본전시장에서는 허스트의 나비 문양이 그려진 삼베 천을 씌운 데크 체어(deck chair·접의자)를 만날 수 있다.
작품가 비싸기로는 남부럽지 않은 미국 작가 제프 쿤스는 비치타월, 열쇠고리 등의 소박한 일상용품들로 대중과 눈높이를 맞춘다. 루이 15세의 정부(情婦) 퐁파두르 부인으로 분장한 미국 사진작가 셔먼의 사진이 박힌 도자기 세트도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뇌쇄적인 의자를 만난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는 미국 육체파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도발적인 입술 모양에서 착안, 1936년 펠트천과 나무로 메이 웨스트의 입술 모양을 본뜬 새빨간 의자를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뇌쇄적인 의자인 '메이 웨스트 입술 소파'를 비롯한 근·현대 의자 430여점이 비엔날레 특별전인 '의자, 걷다'전(展)에 나왔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스티브 잡스가 앉았던 스위스계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검정 가죽 소파도 만날 수 있다. 비엔날레 초대국가인 핀란드 전시관에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핀란드 공예품 860점이 전시됐다.
◆'네 머리로 생각하라'… 전시 설명카드 없어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품에는 작품 제목, 작가, 제작연도 등을 명기한 설명카드를 붙이지 않았다. 작품 상세 정보를 보려면 스마트폰으로 전시장 입구의 QR 코드를 스캔하거나 별도로 비치된 책자를 뒤져야 한다. 정준모 총감독은 "관람객들이 '나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의도된 불친절'에 대한 반응은 양분된다. 관람객 이상명(50·주부)씨는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세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반응이었다. 반면 김명선(20·대학생)씨는 "내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한 주최측의 의도가 신선하다"고 했다. 도발적인 전시다. (043)277-25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