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가 한집에 살다 보니 집이 망가질 지경이 됐다.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내놓은 유로존 위기에 대한 해석이다. 그린스펀은 7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유로존 위기는 북유럽과 남유럽 사이의 소비 성향이 확연히 달라서 생긴 '문화 위기' 측면이 있다"고 했다. 검소한 북유럽(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핀란드·프랑스)과 흥청망청하는 남유럽(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이 '유로존'이라는 한집에 모여 사는 바람에 지금의 위기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북부 유로존은 역사적으로 높은 저축률과 낮은 물가 상승률을 보여 왔지만, 남부 유로존에 속하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낮은 저축률과 과소비가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했다.
그린스펀은 남유럽이 북유럽의 신용도에 기대어 싼값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도 남유럽의 소비문화를 부추겼다고 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들어가기 이전 3년 동안 그리스의 드라크마화 표시 10년물 국채 금리는 독일 국채에 비해 4.5%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의 채권 수익률도 같은 기간 각각 3.7%포인트, 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남유럽 국가들이 이전보다 훨씬 낮은 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1999년 유로화가 출범한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선 '그리스인들이 마치 독일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유로화 출범 전부터 북유럽 국가들은 검소한 곳으로 손꼽혀 왔다. 반면 차입 비용이 줄어든 남유럽 국가들의 선택은 소비였다. 2003년부터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선 지출이 소득을 넘어섰다. 그는 "유로화 도입 이후 올해 1분기까지 북유럽으로부터 남유럽으로 재화와 서비스가 끊임없이 이동했고, 이는 북유럽이 사실상 남유럽의 소비를 보조해 준 것"이라고 했다. 높은 물가와 비싼 임금도 남유럽을 대표하는 말이 됐다.
현재 유로존의 위기는 남유럽에 집중되어 있다. 남유럽 국채와 독일 국채의 금리 차이는 3.7%포인트(이탈리아)에서 19.6%포인트(그리스)에 이른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 국채의 금리 차이는 1%포인트도 나지 않는다.
그린스펀은 "문제는 남유럽 국가가 검소한 북유럽 문화를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느냐는 것이지만, 문화는 각국 개성과 직결돼 있어 쉽게 바뀔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로화가 가치 있는 단일 통화로 남으려면 결국 정치적으로 통합된 유로존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