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 청라국제도시에서 달튼외국인학교 개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교직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회한이 교차했다. 이 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학교법인은 '봉덕학원'이다. 이 법인은 지금의 청라지구 토대를 마련한 '첫 삽'의 주인공이다. 1960년대 초 봉덕학원은 인천해양수산대학 설립과 피란민 정착지 마련을 위해 서구 경서동 일대를 매립할 계획을 세운다. 64년 9월 9일 농림부로부터 수산증식사업허가를 받은 후 천해개발공사 간판을 달고 간척사업을 시작한다. 경서동-장도-일도-청라도-장금도-율도-원창동을 제방으로 연결해 1000만㎡가 넘는 간척지를 만드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공사였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봉덕 이사장은 서울, 인천 등지에서 가난의 굴레 속에서 힘들게 사는 고향사람 1000여명을 모아 이 사업의 취지를 설명한다. 그들에게 공사기간 중 생활비를 대주고 공사가 끝나면 가구당 2정보의 땅을 주기로 약속한다. 인부들은 경서동 인근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거처를 마련한다.

그들은 특별한 장비도 없이 곡괭이와 삽 그리고 지게와 손수레를 이용해 하루 10여m씩 제방을 쌓아나갔다. 그나마 세찬 조류에 밀려 아침에 나가보면 반 이상이 바다에 쓸려나갔다.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자도 속출했다. 석산 폭파 때 돌에 맞아 죽거나 떠내려가는 작업선을 건지려다 물살에 휩쓸려가는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부들은 심하게 동요했고 일부는 새 일터를 찾아 인천 시내로 빠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인천시는 6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700t의 밀가루를, 67년에는 쌀 400t을 지원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공사는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한미76공병대의 도움으로 급진전되었다. 공병대는 불도저 3대, 트럭 5대, 크레인 2대 등 공사 장비로 물막이 작업을 돕는 한편 주한미군항만사령부에 요청, 67년 8월부터 상륙정을 동원해 매달 100대 트럭분의 돌을 실어다 주었다. 6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970년 10월 700~800m짜리 물막이 공사의 끝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준공을 불과 2개월 앞두고 건설부로부터'1년 안에 380만평을 해발 9m 높이로 추가 매립하라'는 공문이 날아온다. 백방으로 뛰면서 노력했지만 메울 흙과 장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공사는 중단되었다.

이 땅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 동아그룹으로 넘어간다. 80년대에 들어서자 국내 경제는 중동건설 침체로 인해 악화 상황으로 치닫는다. 정부는'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대책을 내놓는다.

1960년대 중반 섬과 섬을 잇는 청라지구 물막이 공사 모습.‘ 봉덕학원 50년사’에 실려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끝낸 동아건설이 해결사로 나섰다. 80년 1월 3500만여㎡의 매립면허를 취득하고 6월 30일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여기에는 봉덕학원이 제방을 쌓고 물을 빼놓은 간척지도 포함되었다.

91년 1월 마침내 10여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친 이 땅은 '김포매립지' 혹은 '동아매립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아는 농업용지였던 이 땅의 절반이 넘는 2000여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터로 환경부에 넘기고 남은 땅의 용도변경을 위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전방위 로비전을 펼친다.

그러나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자 급기야 '마이클 잭슨' 카드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온 마이클 잭슨을 회장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고 다음 날 매립지 현장을 둘러보게 한다. 동아측은 그가 매립지에 대단위 위락단지 개발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 계획도 진척이 되지 않으면서 자금난에 몰린 동아건설은 농업기반공사에 땅을 팔지만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이후 이 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봉덕학원은 이 땅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지 1993년 경서동에 청소년수련원 경인유스호스텔을 개원한다. 그러나 이 시설은 2005년에 청라지구로 편입되면서 이마저도 폐쇄된다.

달튼외국인학교의 교훈은 'Pioneer to Serve(봉사하는 개척자)'다. 봉덕학원은 달튼외국인학교 설립을 계기로 1960년대 청라에서 펼치다 잠시 접었던 개척정신을 다시 불사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