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색 조끼를 입은 스페인 환경미화원들이 광장에서 신나게 물청소를 하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광장은 목하 세례 중. 분방하게 널브러져 있던 담배꽁초와 맥주병이 물벼락을 맞는다. 쓰레기를 버릴 자유와 청소의 의무가 공존하고, 성(聖)과 속(俗)이 교차하는 곳. 전날 밤의 광란(狂亂)이 자취를 감춘다. 현지시각 21일 아침 8시. 성 야곱(산티아고)의 묘지가 저 너머, 광장 옆 성당 안에 있다.
풍륜(風輪)은 전날, 먼지투성이가 되어 마침내 입성했다.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800㎞. 40일 동안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밟은 순례자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상처투성이 라이더의 성취감 역시 만만찮다.
매일 낮 12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순례를 마친 영혼들을 위한 미사가 시작된다. 9세기 무렵 성 야곱의 유물이 이 부근에서 발견된 뒤 1075년에 건립된 성당. 그리스도교 첫 1000년 동안 세계에는 세 개의 신성한 순례길이 존재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무덤으로 가는 길, 예루살렘 예수의 성묘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이곳.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자리잡은 성인 야곱의 무덤으로. 황금빛 제단과 거대한 금동향로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이 거대한 성당에는, 30명이 넘는 신부들이 동시에 고해성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정면의 제단에서는 사제가 마이크를 잡고 전날 도착한 순례자들의 국적과 인원을 호명하고 있다.
순례의 황금세기였던 14세기에는 전 유럽에서 몰려든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은하수길(콤포스텔라)을 따라 걸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갈림길마다 선명하게 표시된 조개 문양과 화살표가 순례자를 안내하지만, 중세였던 당시에는 밤의 은하수를 제외하면 이들을 안내할 표지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순박한 순례자야 믿음 하나에 의지해 길을 떠났겠지만, 중세 스페인 왕들까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12세기경 스페인은 이베리아반도에 쳐들어온 무슬림과의 싸움에서 성 야곱의 신비주의를 이용했다. 순례길을 따라 여러 군단이 조직되었고, 야곱의 유골은 마호메트를 등에 업은 무어인들을 물리치는 강력한 영적 보루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왕의 영혼을 공포가 지배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군대가 자신의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한 것. 결국 자신을 보필했던 부하들의 재산을 빼앗고 목숨까지 빼앗기 시작했다. 영성의 길은 곧 권력의 길이었고, 삶과 죽음의 길이 계통 없이 뒤섞였다.
중세의 순례길이 현대의 순례길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고, 누구나 자신만의 깨달음과 교훈이 있을 것이다. 이번 자전거 기행을 후원한 LS전선 구자열(58) 회장은 알프스산맥의 비포장도로 700㎞를 달리는 트랜스 알프스도 10년 전 완주했던 자전거 레이서. 이번에도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전 일정을 함께 달렸다. 그에게 이번 산티아고에서의 교훈은 삶의 속도에 대한 깨달음이다. 자신의 뒤통수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배낭을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무수한 순례자를 보면서 "스스로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여드름투성이 청소년들에게 산티아고는 열정과 성취의 대상이다. 새벽에는 초겨울을 느끼게 하던 오 세브레이로의 풀밭에서 텐트와 침낭 하나로 밤을 지새우던 한 벨기에 소년은 "내게 산티아고 순례는 대학에 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하이킹일 뿐"이라면서 "영성은 잘 모르겠고, 길 위에서 새 친구를 만나는 일이 나를 매일 들뜨게 한다"고 했다.
전날 밤 김훈은 대취했다. 그는 산티아고의 거대하고 화려한 성당을 보며 역설적으로 빨리 일상으로 되돌아가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우리는 땅 위의 길, 지상의 길로 여기에 도착했지. 사람들은 지상의 길이 영원의 길, 초월의 길로 통하기를 바라면서 여기를 오는 거잖아. 그런데 와보면 역시 땅 위의 길일 뿐이야. 인류의 영원한 환상이지. 40일 동안 걸어왔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삶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일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인데, 기적이나 초월, 영성에 의해 세계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는 거잖아."
이 지독한 허무주의자는 피에타상을 가리키면서 "고통과 슬픔 안에 인간의 구원이 있다는 게 너무 싫다"고 투덜거렸다.
한때 청년 김훈의 우상이자 전설이었던 이탈리아의 알피니스트 라인홀트 메스너(67)는 "길은 내 뒤에 있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깎아지른 직벽을 오르던 이 현대 등반의 전설에게 길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풍륜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여포의 천리마를 술안주로 삼았다. 천리마는 명마가 아니라는 것. 천리마가 하루에 천리를 간들, 만리를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그 말 위에 누가 타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누구나 자신만의 깨달음과 교훈이 있는 법. 결국 나의 길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물청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광장에서 사람들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천년의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이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조롱박 물 한 모금에 의지해 걸어온 길이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야곱(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800㎞의 길이다. 예수가 죽은 뒤 성 야곱과 성모 마리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