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08년의 일이다. 나라가 위태로운 시절이었다. 최남선은 자신이 발간하는 '소년'지에 '조선의 형국이 맹호(猛虎)가 발을 들고 동아시아 대륙을 향해 뛰는 형상이기에 조선은 앞으로 진취적이며 팽창적으로 무한히 발전할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무한한 자긍심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조선 맹호론'을 접한 '황성신문'은 얼마 뒤에 '지도의 관념'이라는 칼럼을 실어 이를 극찬한다. 동시에 조선 사람들이 조선 형국을 비하시키고 있는 당시 습속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우리나라 지형을 평함에 있어서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우리나라 지세가 노인 모습과 같아 중국에 절을 하는 형상이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어떤 무식한 이는 개와 같은 형상이라고도 하였다. 박학다식한 이중환이 그러할진대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리오. 이것은 비록 근거 없는 속된 말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자주독립 정신을 심하게 훼손하는 말이다.'
여기서 '황성신문'이 이중환을 거명한 것은 그를 포함한 조선 후기 일부 실학자들의 국토관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즐겨 인용하는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도 포함된다. 옥돌도 잡석으로 무시해버리면 보물이 되지 못하고, 오동나무도 땔감으로 써버리면 가야금으로 만들 수 없듯, 금수강산 조선을 무시하여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 것은 이중환과 같은 썩은 선비(腐儒)나 속물들의 죄라는 것이다.
이와 달리 맹호로 표현되는 조선은 어떤 나라여야 할까?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와 같은 세계 대국이 되는 것이며, 을지문덕 같은 영웅이 출현하여 조선을 세계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최남선은 갑자기 조선 형국을 맹호로 비유했을까? 조선조 '썩은 선비'들의 형국론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의 토끼 형국론에 대한 반론이었다. 고토 분지로는 '조선은 그 모습이 토끼가 발을 모으고 일어서서 중국 대륙을 향하여 뛰어가는 형국'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은 늘 남의 속국이 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조선을 토끼 형국으로 보았던 일본인은 자기 나라를 어떻게 보았을까?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으로 보았다. 일본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과 맞물리는 이야기이다. '미개한 아시아(여기에는 조선도 포함된다)를 버리고 선진국인 유럽세계로 진입하자'는 일본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주장을 비룡상천형이라는 형국론으로 호응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국론(形局論)이란 무엇인가?
지형지세를 사물의 모양에 빗대어 설명하는 풍수의 한 방법론이다. 땅 모양이 특정 사물과 비슷하면 그 사물과 비슷한 성정을 드러낸다는 유비론(類比論)적 관념이다. 특정한 형국의 이름을 갖는 땅은 그 모습이 실제로 그와 비슷해서 그 이름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형국을 노인으로, 토끼로, 맹호로 보았던 것도 그 땅이 그와 같은 모습과 성정을 지녔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국으로 상념(想念)하고 그렇게 되도록 기원하고 노력하느냐 여부이다.
풍수(風水)란 문자 그대로 바람(風)과 물(水)이다. 흐르는 물과 바람으로 인해 변화하는 땅과 그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풍수이다. 당연히 그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나 세계관도 변하기 마련이다. 더불어 형국론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까닭에 수없이 많은 조선(한반도) 형국론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시대문제에 대한 대응논리였다. 최남선의 '조선 맹호론'도 일본이 조선을 토끼로 얕잡아본 것에 대한 대응논리였다.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론이자 이데올로기였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새로운 형국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Why?'에 격주로 '국운풍수(風水)'를 연재하게 되는 김두규 교수는 독일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풍수학에 뛰어들었다. 현재 전주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형 풍수를 추구하며,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에 맞게 풍수를 재해석해 보급해왔다.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한국 풍수의 허와 실'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