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감독이 된다는 것. 그중에서도 최고 열혈 팬들을 거느린 롯데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2010년 시즌 후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이어 제21대 롯데 사령탑에 오른 양승호(51) 감독은 취임 전 "롯데 감독은 독(毒)이 든 성배(聖杯)와 같다"고 했다. 최고 인기 구단을 지휘한다는 영광 뒤에 숨겨진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양승호 감독은 올해 '롤러코스터' 시즌을 보냈다. 롯데는 시즌 초반 극심한 투타 불균형으로 최하위까지 추락하다가 7월 중순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위로 치솟아 올랐다. 한때 '역적' '호구'란 소리를 듣던 그가 최근에는 '양승호걸' '양승호감' 양승호굿' 등으로 불린다. 한 극성 팬은 만약 "롯데가 우승하면 그의 위상이 '제갈량승호'로 격상될 것"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 댓글은 아예 보지도 않아요."
시즌 초반 롯데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칠 때 팬들의 화살은 양 감독에게 쏠렸다. 일부 팬은 '밤길 다닐 때 조심하라'는 협박성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다. 하도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까닭에 이전에 즐기던 트위터·이메일 등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선 롯데 관련 기사를 봐도 댓글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요즘 성적이 좋아 칭찬 댓글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롯데가 또 부진하면 언제든지 안 좋은 글이 나올 텐데요. 지금은 일종의 잠복기라고 봐야죠."
양 감독은 부산·경남지역 팬들의 '야구 사랑'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시즌 전 식당에 가면 소주를 테이블로 보내 축하해주던 사람들이 성적이 안 좋으니 싸늘하게 바뀌었다. 예전에 자주 이용하던 택시도 언젠가 기사에게 욕을 실컷 얻어먹고 난 뒤엔 쳐다보지도 않는다. 야구장과 숙소를 오갈 때는 걸어서 다녔고, 어쩌다 멀리 나갈 일이 있으면 코치들 차를 얻어 탔다.
성적이 좋으니 공기가 또 달라졌다. 식당에 가면 밥값을 안 받으려는 사람이 부지기수란다. 팬들도 이젠 비난 대신 박수를 쳐주고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최근 KIA와의 사직 홈경기에서 승리해 2위가 되자 경기 끝나고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팬들이 야구장 앞 광장에 몰려들어 자신의 이름을 외쳐댔다고 한다.
"얼마 전 NC 다이노스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과 통화를 했는데, 나보고 '부산에서 감독하느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다'고 위로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창원 쪽도 팬들 야구 열정이 만만치 않으니 정신 바짝 차리라고 말해줬어요."
◆ "저, 호구였던 거 맞아요."
양 감독은 롯데의 초반 부진을 자신의 시행착오로 돌렸다. 수석코치(OB), 감독대행(LG)을 오래 하면서 가졌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했다. 그의 들쭉날쭉한 투수 운용법과 야수 기용은 계속 팬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가 초반에 호구 짓을 했으니까 팬들에게 '양승호구'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꾸 호구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을 리 있나요. 잘해서 그런 소리 나오지 않게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양 감독은 현재 성적을 선수단의 공으로 돌리면서 특히 홍성흔과 이대호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두 선수가 어려울 때 선수단 분위기를 잘 잡아줬다는 것이다.
"이대호가 한 번 화나면 저도 무서워요. 어린 선수들 좀 풀어지는 모습 보이면 '야구 혼자 하냐'고 큰소리치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그리고 경상도 발음이 좀 강하잖아요. 홍성흔이는 자기 성적이 안 나와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스스로 분위기 살리려고 하는 모습이 아주 좋고요."
◆"목표는 가을 야구? 우승!"
롯데의 현재 성적은 2위다. 최근 상승세대로라면 1위를 노려볼 수 있지 않으냐는 얘기가 가끔 나온다. 양 감독은 신중했다. 그는 "일단 2위를 지키는 게 급선무"라며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과는 알아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시즌 초 안 좋을 때도 선수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붙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올 것이라고 당부했죠. 솔직히 지금 우리 팀 기대 이상이에요. 너무 잘 나가면 떨어질 때도 있는 법이죠. 선수들에게 항상 안심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어요."
그는 그러면서도 "올 시즌 롯데의 가을 야구는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올스타 이전과 이후 롯데 야구는 확연히 다릅니다. 초반엔 선수들에게 번트작전을 주문해도 실패 확률이 매우 높았죠. 지금은 작전 수행 능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요즘 롯데 보면서 다른 팀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요?"
양 감독은 "무조건 이겨야 박수를 받는 게 프로의 세계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며 "시즌 끝날 때까지 욕을 안 얻어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