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면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이 우선이었다. 부팅되는 시간에 교복을 벗어 던지고 미처 윈도 화면이 뜨기도 전에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전형적인 게임 중독 증상이었다. 저녁 식사 때 식탁에 앉는 시간 말고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온라인 게임에 매달렸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니 중학교 3학년생의 몸무게는 120㎏를 넘나들었다.
내신 전교 1등, 수능 모의고사 언·수·외 1등급, 백분위 99.95%. 대구 대륜고등학교 3학년 김민준(18)군의 중학교 시절 얘기다. 김군은 중3 때까지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반에서는 물론이고 전교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방과 후 게임에 전념하기 위해 숙제와 공부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모두 끝냈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부모님도 김군이 컴퓨터 계통으로 진출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
◆목표 없던 아이, 경제학에서 돌파구를 찾다
문제는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나타났다. 1학년 첫 내신 수학시험에서 50점을 맞았다. 몸무게가 불면서 생활하는 데도 하나 둘 불편함이 생겼다. '더 할 것이 없어' 컴퓨터 게임을 접었지만, 딱히 목표가 없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을 무렵 우연히 접한 것이 청소년 경제 대회 모집 요강이었다.
"목표는 생겼는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나 막막해서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게임도 좋아했지만, 인터넷 서핑도 좋아해서 예전부터 컴퓨터, 과학, SF(공상과학) 소설 등 다양한 사이트를 찾아다녔던 게 도움이 됐죠."
그렇게 처음 접한 것이 '맨큐의 경제학'과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두 권의 책이었다.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김군에게 대학 경제학과 교재인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2시간, 한 챕터씩 3개월 가까이 독학으로 파고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인터넷 블로그에 질문하고 자료를 찾아 보충했다.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목표가 생기니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이전까지는 공부를 하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독학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성취감도 컸어요."
몇 달간 경제와 씨름한 끝에 김군은 한국경제신문 주최 TESAT 최우수상, 매일경제신문 주최 TEST 대상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공부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읽은 경제학 서적만 50권. 최근에는 경제지식을 바탕으로 '청소년을 위한 만만한 경제학'(지공신공 펴냄)이라는 책도 냈다.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몸무게도 빠르게 줄어 지금은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공부는 하나로 통한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김군이 얻은 또 다른 소득은 교과목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경제학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어 능력이 필요하고 원서를 보기 위해서는 영어 능력이 필요해요. 그래프와 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과 수학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도 빼놓을 수 없어요. 존 스튜어트 밀과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예요. 이들의 책을 읽으면서 서양철학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됐죠. 이전까지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 하나하나 불필요한 게 없더군요."
수학에 흥미가 없었던 김군은 2학년 2학기부터 이과용인 수리 '가'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학 못하는 경제학자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분·적분이 경제학에서 생산비용이나 수요를 산출하는 데 쓰이는 것을 보며 흥미를 느꼈고 단순한 숫자의 나열로만 생각했던 통계가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이과 수업을 들을 수 없어 6개월간 학원에 다니며 개념을 익혔고 올해 치른 모의고사에서 꾸준히 1등급을 받았다.
◆개념 공부에 충분히 투자하고 조급해하지 마라
김군은 "개념을 익히는 데 시간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같은 개념도 어떻게 응용을 하느냐에 따라 활용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의미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초를 쌓은 다음에는 패턴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과목마다 정해진 관습을 파악하면 큰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이 나오면 무조건 맞다/틀리다' '△△인 경우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을 한다'처럼 유형별 대처법을 익혀야 해요. 패턴은 어렵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개념을 조합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두 번째 조언은 "조급해하지 말 것". 김군은 "많은 친구가 스터디 플래너를 빽빽하게 채우고 '오늘은 몇 페이지 무조건 할 것'이라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왜?' 하는 지 생각하는 아이들은 적다"고 말했다. 양은 단지 공부 정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일 뿐 절대적인 방향을 가리켜 주지 않는다. 한 문제를 풀어도 개선할 점을 찾는 것이 효과적인 공부라는 것이다. 김군은 "숲 안에 있으면 눈앞의 나무만 보일 뿐 길을 잃고 제자리를 맴도는 경우가 많다. 한 발짝 물러나서 큰 줄기를 찾고 다가서면 오히려 공부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