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진 기자] 배우 공유가 열려있던 서랍을 닫고 새로운 서랍을 열었다. 수천 수 만 가지 모습의 공유 중에서 이번엔 처연하고 섬세한, 슬픈 눈을 가진 공유를 꺼내들었다. 묵묵하게 부조리에 맞서는 공유의 모습은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며 백색 스크린을 울린다.

배우 공유가 충격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도가니’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영화 '김종욱 찾기' 등 그간 부드럽고 로맨틱한 연기를 주로 펼쳐왔던 공유는 이번 작품에서 달콤함을 걷어내고 충격적인 진실을 파헤치며 고뇌하는 내면 연기를 선보인다.

그의 스크린 복귀작인 ‘도가니’는 출간 전부터 온라인상에 연재되며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공지영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 무진의 한 청각장애학교에 새로 부임한 미술교사가 성적으로 학대당하던 아이들을 위해 진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렸다.

극 중 공유는 교장, 교사로부터 육체적, 성적으로 학대 받는 아이들을 위해 진실을 찾아나서는 신입 미술교사 ‘인호’ 역을 맡아 부조리한 현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모습을 진정성 있게 표현해 낸다.

‘도가니’는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는 영화도, 경악과 충격에 몸서리치게 하는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관객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툭하고 떨어진다. 사회가 감추고 있던 불편한 진실, 그 진실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하고 있던 우리의 모습이 스크린 속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현실을 바꾸려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속에 안전망을 세우고 싶었을 뿐이다.”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공유는 담담하게 영화에 임한 자신의 소감을 전했다. 군 복무 당시 우연히 선물로 받은 소설책을 통해 내용을 알게 된 공유는 책을 다 읽자마자 작품의 영화화를 떠올렸을 정도로 실제 사건이 주는 충격에 휩싸였다.

“무서웠다. 상식 이하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사실이 허구처럼 느껴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막연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특히 유진의 대사가 내 심장을 건드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싸운다.’ 막연하게 이 작품이 영화화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투자, 배급 등 많은 분들이 손을 내밀어 주셔서 감사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배우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 로맨틱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평소 ‘진지한 청년’으로 불리는 공유는 이번 영화를 통해 한층 성숙된 연기력, 깊어진 눈빛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나약한 존재이자 아픈 딸의 아비로, 홀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들로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의 어깨에 눈처럼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인호를 보면서 욕도 하고 싶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남자라서 그런지 연민이 가더라. 난 유부남도 아니고 애도 없지만 인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씁쓸했다. 영화 속에서는 ‘인호’에게 좀 더 동적으로 그렸다. 소설처럼 주인공을 남루하게 그리면 보는 관객들이 너무 힘들지 않나. 그렇다고 인호를 영웅으로 그리진 않았다. 그건 영화 자체에 대한 욕심일 뿐이다. 대신 돌아갈 수밖에 없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인호의 현실, 그 앞에서 겪는 갈등과 고뇌를 잘 표현해 내려 노력했다.”

매 작품마다 상황에 맞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라며 연기 변신이란 단어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공유. 그는 이 해독 불가한 단어 앞에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연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그 캐릭터에 맞게 극대화 시켜서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가 다 내 모습이다. 변신이란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간 로맨틱한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보면 ‘생각한 거와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렸을 땐 사람들이 날 가볍게 보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좀 드니까 이젠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날 판단하는 근거는 지금까지 내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전부라는 걸. 직접 만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니까. 이젠 좀 여유롭게 생각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날 알겠지. 평가는 나중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유는 여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체득했다고 했다. 책과 음악,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의 대화,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과의 만남 속에서 공유는 배우로서의 길, 인간 공유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서른을 넘긴 남자의 진지함을 동시에 가진 배우 공유. 그가 영화 ‘도가니’의 개봉을 앞두고 관객들에게 부탁한 짧은 한마디는 ‘사랑’이 아닌 ‘응원’이었다.

“소설의 영화화는 정말 막연했던 바람이었다. 공유라는 배우에게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주고, 그렇게 영화가 탄생했다는 것 자체에 너무 만족하고 감사하다. ‘도가니’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 과정자체가 이미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흥행이 아니라 우리 영화가 묻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인호가 느꼈던 먹먹함을 관객들이 느낀다면 언젠가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때, 작은 힘들이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으로 뭉쳐 우리를 보호해 줄 것 같다.”

공유, 정유미 주연의 '도가니'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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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