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 중국학부 양세욱 교수는 2002년 베이징 유학 시절부터 짜장면집을 찾아다녔다. 귀국해서 다닌 중국집까지 합쳐 100곳 넘는 식당의 짜장면을 맛보고 사진 찍었다. 영업 비밀을 기웃거린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2009년 270쪽짜리 짜장면 백서 '짜장면뎐(傳)'을 냈다. 제목부터 '자장면' 대신 '짜장면'이라고 썼다. 그는 "언중(言衆)과 시장에게 철저히 외면받는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짜장면을 빼고 20세기 한국 문화를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 '북경반점'(김의석), 연극 '짜장면'(김상수), 시 '짜장면을 먹으며'(정호승), 동화 '짜장면'(안도현), 가요 '짬뽕과 짜장면'(철가방프로젝트), 만화 '짜장면'(허영만)…. 거기 어디에도 '자장면'이라고 하는 작품은 없다. 표준어 '자장면'을 가리켜 연출가 김상수는 "웃기는 짜장면", 동화작가 이현은 "불어 터진 짜장면발 같은 소리"라고 했다.
▶짜장면은 양파·양배추·감자를 굵직하게 썰어 춘장과 함께 볶다 물과 전분을 넣어 소스를 만든다. 그 원형인 중국 자장몐(炸醬麵)은 삶은 면 위에 춘장·숙주나물·오이·완두콩들을 다양하게 올려 비벼먹는다. 우리는 20세기 초 한국에 상륙한 자장몐을 내내 짜장면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1986년 외래어표기법이 제정되면서 중국 발음에 맞춰 '자장면'이 표준어가 됐다.
▶짜장면은 귀화한 중국 음식쯤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 깊숙이 육화(肉化)한 한국 음식이다. 2006년 정부가 꼽은 '한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에 올랐다. 정부의 물가 중점 관리 52개 품목 중에 식당 음식으론 유일하게 들었다. 그런 짜장면이 표준어로 되살아났다. 국립국어원은 일상에서 흔히 써온 짜장면·택견·품새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기존 표준어 자장면·태껸·품세와 함께 쓰게 했다.
▶이번에 표준어가 된 39개 단어 중엔 이런 게 틀린 말이었던가 싶은 것들이 많다. 쌉싸름하다, 흙담, 나래, 내음, 손주, 어리숙하다, 걸리적거리다, 끄적거리다, 바둥바둥, 아웅다웅, 야멸차다…. 언어는 사람들의 쓰임새에 따라 끝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생명체다. 현실과 동떨어진 표준어 규정은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하다. 신문에도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쓸 수 있게 돼 편하고 자연스럽다. '자장면'이라고 쓸 땐 위선자라도 된 듯 낯이 근질거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