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영된 MBC TV의 사극 '김수로'의 집필을 맡았다가 중도에 물러난 작가가 드라마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벌여 1억3000여만원을 받아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자기가 직접 극본을 쓰려는 제작 고위층의 '과욕' 때문에 작가와 갈등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계약이 해지됐기 때문에 제작사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재판장 정일연)는 작가 김미숙(46)씨가 김수로 제작사 K사를 상대로 5억1600만원을 물어내라며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K사가 김씨에게 1억32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K사는 MBC 사내기업 S사가 드라마 제작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다.

판결에 따르면 김씨는 K사와 32회 분량으로 1억920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S사 간부이자 실질적 제작자 A씨가 아이디어를 주겠다는 제의를 하며 작년 4월 작가 팀에 합류한 뒤부터 김씨와 갈등을 빚으며 대본작업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A씨는 보도국 간부와 뉴스 앵커 등을 지낸 유명 기자 출신이다.

A씨는 작년 4월 보조작가들과 함께 직접 드라마 11회 대본의 써서 김씨에게 전달했지만, 김씨가 내용을 문제 삼자 반발해 다시 11·12회 대본을 써서 김씨에게 보냈다. 이에 다시 김씨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A씨는 4월 김씨가 이끄는 작가 팀에서 빠졌지만, 5월 중순 다시 돌아오면서 김씨와 티격태격했다. 연출자까지 A씨가 쓴 대본의 수준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6월초 A씨가 다시 작가 팀에서 빠졌지만, 김씨는 집필료가 회당 6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깎이는 내용으로 계약조건이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어 연출자가 뇌경색으로 입원했고, 김씨는 집필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재판부는 “영향력이 큰 A씨가 독자적으로 대본을 쓰며 벌어진 문제들, 또 김씨를 작가로 추천한 연출자의 입원 직후 계약해지가 통보된 사정 등을 감안하면, K사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해 김씨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K사는 “김씨의 집필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등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A씨가 합류하기 전에는 극본집필 작업이 순조로웠던 것으로 보이고, 다른 관계자들도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K사와 계약할 때 ‘어느 한 쪽이 계약을 위반했을 때 위약금은 집필료의 3배로 정한다’는 조건을 근거로 5억1600만원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김씨가 물러날 당시 집필분량이 계약분량에 미치지 못했고, 이미 선계약금을 지급받은 점 등을 감안해 1억3200만원을 배상액수로 정했다. 양측은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