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컴퓨터 벤처회사에 몸담고 있을 때 동료와 함께. 오른쪽이 이대우씨.

'탁탁탁! 쓱싹쓱싹….'

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하루는 톱질과 망치질로 시작된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손바닥만 한 나뭇조각을 이리 덧대고 저리 덧대다 보면 어느새 뚝딱 집 하나가 만들어진다. 뭔 집이 이렇게 쉽게 완성되는지 궁금해들 하실 게다. 내가 만드는 집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 새들을 위한 '새집'이다. '새장'과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새집(birdhouse)은 숲 속 새들이 자유롭게 와서 살다 가는 집이고, 새장(cage)은 새들을 가둬 기르기 위한 우리다. 새집은 자유를, 새장은 속박을 전제로 하니 출발이 다르다.

나는 강원도 봉평의 흥정계곡 근처에 살며 새집을 만드는 목수다. 지금은 도시에 나가면 숨이 팍팍 막히는 진짜 시골촌놈이 됐지만 13년 전만 해도 앞만 보며 각박한 일상을 살았던 서울의 직장인이었다.

직장인으로서 참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처음 선택한 직업은 기자였다. 1969년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수습 시절 다섯 대의 텔레타이프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외신기사 더미에 파묻혀 쩔쩔매던 일, 사무실이 얼마나 추웠는지 볼펜이 꽁꽁 얼어붙어 글을 쓸 수 없던 기억…. 5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형성된 중요한 시기였다. 이후 해운회사를 거쳐 1980년대 초반 유명 컴퓨터 벤처기업에 합류했고, 대표이사직을 끝으로 1990년대 초반 회사를 나왔다.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한 곳은 대기업 화섬회사였다. 부사장을 하며 IMF 외환위기 즈음 2년간 계열분리 등 회사 구조조정 하는 일을 맡았다.

이씨가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제일 작은 집, 새집을 들고 있다.

직장생활을 접을 무렵 아내와 함께 틈나는 대로 6번 국도를 타고 팔당댐을 지나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하루는 용대리에서 미시령을 넘어 설악산으로 갔다가 봉평 근처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거닐다가 사방이 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있고 물속 자갈 한 톨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곡을 만나게 됐다. 흥정계곡이었다. 마치 무릉도원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시골에서 살고 싶다던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내와 함께 틈만 나면 흥정계곡을 찾았다. 귀농(歸農) 관련 책과 잡지를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선뜻 도시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망설이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귀농을 추진한 건 아내였다. 1998년 드디어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살고 있던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흥정계곡에 있는 한 농원 안에 작은 집을 지었다.

시골생활을 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목공 일이었다. 그러던 참에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한 동생이 시골생활에 필요할 거라며 목공기계와 도구를 가져다줬다. 이 기계들로 시작한 게 새집이었다. 골짜기를 돌며 주운 나뭇가지, 공사판에 버려진 자투리 판자를 가져와 톱으로 잘라내고 망치로 두드려 새집을 만들었다. 작품이 쌓이자 2004년 오대산 국립공원 산자락에 있는 '한국 자생식물원'에서 130점의 새집을 내걸고 첫 전시회를 열었다. '새집' 전시라고 했더니 '새 집(new house)'으로 와전돼 '새 집 130여채를 전시하는 대단한 부동산 사업가'로 알려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시골생활의 노하우가 쌓이니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싶어하는 이들과 체험을 나눠야겠다 싶었다. 시골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새집 이야기를 담아 2006년 '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을 썼다. 최근 실용적인 새집 만들기 요령을 담은 두 번째 책 '새집 목수 이대우의 새집 만들기'라는 책도 내놨다.

새집은 일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꿔놨다. 예전엔 그저 하찮게 봤던 소소한 것들을 이제는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보게 된다. 굴러다니는 목재 한 토막만 봐도 내 머리는 어느새 망치질에 들어간다. 몸과 정신을 골고루 움직이는 것, 이게 목공(木工)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죽은 판재를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도 있다.

우리 또래 많은 사람이 전원생활을 궁금해하면서 자신들도 자연에 파묻혀 살겠노라 한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시골생활을 권하지 않는다. 도시에 살다 시골로 내려오면 무대에서 사라져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연극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내려앉고, 어느 날 갑자기 1분짜리 단역으로 전락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들 때 자신을 위한 무대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품 넓은 자연을 배경 삼아 시골이라는 아담하고 알찬 무대를 만들고 그 무대의 주연이 될 준비가 되어야만 자연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