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과연 마무리투수는 시즌 MVP를 받을 수 있을까.
프로야구에서 마무리투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요즘처럼 마무리 불신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마무리투수가 기본적으로 1이닝을 던지는 투수다. 야구는 9이닝을 기본으로 하는 경기. 선발투수와 타자들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순수 마무리투수가 MVP 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 거룩한 도전을 하는 투수가 있다. 삼성 '끝판대왕' 오승환(29)이 주인공이다. 과연 오승환은 MVP가 될 수 있을까. 한미일 역대 사례로 오승환의 MVP 가능성을 살펴본다.
▲ 메이저리그 사례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구원투수가 사이영상을 받은 건 총 7번. 특히 1984년 디트로이트 좌완 투수 윌리 에르난데스는 마무리투수로는 사상 최초로 MVP-사이영상을 동시 석권했다. 1984년 당시 80경기에서 9승3패32세이브를 기록했다. 무려 140⅓이닝을 던질 정도로 공헌도가 대단했다. 블론세이브는 단 1개. 그것도 시즌 마지막 경기로 이 경기 전까지 32경기 연속 세이브 행진을 벌였다. 세이브 성공률 97.0%. 포스트시즌 6경기에서도 3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으로 위력을 떨치며 디트로이트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1이닝 마무리투수가 MVP와 사이영상을 차지한 건 1992년 오클랜드 소속 데니스 에커슬리가 처음이다. 토니 라루사 감독은 1988년부터 에커슬리를 9회 이기는 상황에서만 등판시키는 1이닝 마무리로 기용했다. 풀타임 마무리 5년차가 된 1992년 에커슬리는 7승1패51세이브 평균자책점 1.91을 기록했다. 69경기에서 80이닝으로 경기당 1이닝을 살짝 웃돌게 던졌다. 블론세이브 3개로 세이브 성공률은 94.1%. 36경기 연속 세이브는 당시 메이저리그 신기록이었다. 오클랜드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나 토론토에 막혀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가장 최근에는 2003년 LA다저스 에릭 가니에가 마무리투수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2003년 가니에는 77경기에서 2승3패55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77경기에서 82⅓이닝으로 1이닝 마무리. 하지만 55차례 세이브 기회를 모두 지켰다. 블론세이브 1개 없는 세이브 성공률 100.0%. 전년도부터 이어온 연속 세이브 신기록 행진도 63경기로 늘렸다. 그해 다저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가니에의 눈부신 활약은 그마저 잠재웠다. 그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경쟁자로 제이슨 슈미트(17승5패 2.34), 마크 프라이어(18승6패 2.43)가 있었지만 기자단의 선택은 완벽한 마무리 능력을 과시한 가니에였다.
▲ 일본프로야구 사례
일본프로야구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401개(1968년) 기록을 갖고 있는 좌완 투수 에나쓰 유타카는 선발뿐만 아니라 마무리로도 성공한 투수였다. 히로시마 소속이었던 1979년 55경기에서 104⅔이닝을 던지며 9승5패22세이브 평균자책점 2.66으로 구원투수로는 최초로 리그 MVP에 선정됐다. 이어 니혼햄으로 팀을 옮긴 첫 해였던 1981년에도 45경기에서 83이닝을 소화하며 3승6패25세이브 평균자책점 2.82로 활약했다. 니혼햄을 19년 만에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끈 에나쓰는 다시 한 번 리그 MVP로 선정돼 센트럴리그에 이어 최초로 양대리그에서 MVP를 차지한 선수가 됐다.
1988년에는 대만출신으로 주니치에서 뛴 곽원치(일본명 가쿠겐지)가 마무리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MVP까지 거머쥐었다. 1987년부터 마무리로 전업한 곽원치는 2년째를 맞은 1988년 61경기에서 111이닝을 소화하며 7승6패37세이브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했다. 당시 곽원치가 기록한 37세이브는 1997년 사사키 가즈히로가 깨기 전까지 일본프로야구 최고 기록이었다. 그해 주니치는 센트럴리그를 제패했다. 같은 팀 에이스 오노 카즈유키가 18승4패 평균자책점 2.60으로 활약하며 다승 1위, 평균자책점 5위를 차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1998년 사사키가 MVP를 차지한 마무리투수로 남아있다. 선동렬과 구원왕 경쟁을 벌인 사사키는 1998년 1승1패45세이브 평균자책점 0.64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떨쳤다. 블론세이브는 단 하나로 세이브 성공률 97.8%. 특히 51경기에서 56이닝을 던진 1이닝 마무리라는 점에서 에나쓰나 곽원치와 차별화된다. 사사키의 완벽에 가까운 마무리로 1998년 요코하마는 센트럴리그에 이어 재팬시리즈까지 휩쓸었다. 요미우리 괴물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34홈런 100타점으로 2관왕을 차지했지만 사사키의 벽을 넘지 못했다.
▲ 한국의 사례
'최고 투수' 선동렬은 총 3차례 MVP를 차지했다. 모두 선발투수로 뛰며 따낸 트로피였다. 1993년 해태 선동렬은 마무리로 전업하자마자 놀라운 위력을 떨쳤다. 49경기에서 10승3패31세이브 평균자책점 0.79. 126⅓이닝으로 규정이닝까지 소화하며 평균자책점과 구원왕 2개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러나 홈런·타점왕에 오르며 재기 신화를 쓴 삼성 김성래와 타율·출루율·장타율 3관왕을 차지한 괴물 신인 양준혁에 밀려 MVP 투표 3위에 그쳤다.
한국에서 마무리투수가 MVP를 차지한 건 1996년 한화 구대성이 유일하다. 1996년 구대성은 18승3패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으로 다승·평균자책점·구원왕에 승률(0.857)까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러나 구대성은 순수 마무리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5회에도 조기등판하는 중간·마무리에 가까웠다. 55경기에서 무려 139이닝. 그래서 다승왕-구원왕 동시 석권이 가능했다. 2000년대 이후 이 같은 마무리투수는 사라졌다.
오승환이 순수 마무리투수로는 최초로 MVP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오승환은 지난 2006·2007년에도 MVP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나 모두 3위에 그쳤다. 아시아 한 시즌 최다 47세이브를 달성한 2006년에는 투타에서 3관왕을 차지한 류현진과 이대호에게 밀려 10표에 만족해야 했고, 2년 연속 40세이브를 달성한 2007년에는 22승의 다니엘 리오스와 17승의 류현진에게 밀려 단 2표에 그쳐야 했다.
올해 오승환은 43경기에서 1승36세이브 평균자책점 0.59를 기록하고 있다. 블론세이브는 단 하나. 세이브 성공률이 97.3%에 달한다. 삼성의 1위 질주에는 오승환의 존재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무리 불신 시대에 모든 팀들이 오승환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을 부러워하고 있다. 최연소-최소경기 200세이브와 지난 2년간 부상 시련을 이겨낸 감동 스토리도 있다. 14경기 연속 세이브 성공으로 정재훈(두산)이 2006년 기록한 최다 연속 세이브(15경기)에도 1경기로 다가섰다. 다만 약점이라면 1이닝 마무리라는 것. 올해 오승환은 43경기에서 46이닝을 던졌다. 하지만 오승환이라는 존재는 숫자 그 이상이다. 오승환의 성적만큼 MVP 경쟁자들의 성적도 중요하다. KIA 윤석민과 롯데 이대호가 어떤 성적을 내느냐가 관건. 같은 팀 4번타자 최형우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순수 마무리투수의 MVP 도전.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수가 오승환이라면 충분히 자격이 된다. 과연 올해 MVP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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