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용봉탕, 경찰청창살, 안양양장점."

늘 근엄하게만 보이던 경찰들이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일제히 소리쳤다. 쑥스러운지 연방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11일부터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 75명이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사건 브리핑과 언론 인터뷰를 할 기회가 많은 형사·수사과장 62명과 수사부 계장 9명, 국제범죄수사대장 4명이 대상이다.

지난 18일 오후 8명의 경찰이 서울 신촌의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수업에 참가했다. 동작경찰서 한증섭 형사과장은 "을지훈련 상황실장으로 밤을 새운 후 곧장 수업에 참가했다"고 했다. 강의는 KBS 아나운서 출신으로 지금껏 지상파 방송 3사 아나운서 50여명을 배출한 성연미 대표가 맡았다.

18일 오후 서울 신촌의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서울시 경찰서 형사·수사과장들과 국제범죄수사대장들이 성연미 대표의 지시에 맞춰 발음 교정 연습을 하고 있다.

수업에 앞서 성 대표가 미디어와 관련된 고민에 대해 묻자, 구로경찰서 박용만 수사과장은 "유영철을 검거했을 때 인터뷰를 하며 애를 먹었다"며 "인터뷰가 껄끄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김태현 국제범죄수사4대장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위축이 되고 부담이 크다"며 "좀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시민들 곁에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수업은 자기소개로 시작됐다. 이를 카메라로 촬영한 후 TV 화면으로 다시 보여주자, 다들 어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성 대표는 "권위적인 어투와 무감각하고 애정 없는 표정이 문제"라며 "브리핑을 할 때 진심이 담긴 인사말과 경찰의 의지를 담은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잊지 않았다.

이론 교육이 끝난 후 실습에 들어갔다. 기존의 경찰 브리핑 화면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나 수강생들에게 보도자료를 나눠준 뒤 실제 상황처럼 카메라 앞에서 브리핑을 시키자, 이들은 면접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긴장했다. 실시간 녹화한 모습을 다시 보여주자,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눈을 깜빡거리고, 말을 더듬을 뿐 아니라 창피한지 혀를 빼꼼히 내미는 경찰도 있었기 때문. 그때마다 성 대표의 지적이 뒤따랐다. 성 대표는 "늘 카메라에 시선을 두도록 노력하라"며 "호감을 높일 수 있도록 표정으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수업이 끝난 후 투표를 통해 강인석 국제범죄수사3대장이 MVP로 선정됐다.

경찰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법조계도 '말하기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법원 판사들도 조만간 방송사 아나운서를 초빙해 특강을 듣기로 했다.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검찰, 변호인, 사건 당사자는 물론 방청객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재판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년에는 장·차관들이 미디어 트레이닝에서 수백만원대의 고액 과외를 받았다는 발표가 나오며 미디어 트레이닝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이 이번 미디어 트레이닝에 쓴 예산은 총 450만원. 봄온 아카데미에서 실비만 받고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성 대표는 "경찰이 브리핑이나 인터뷰를 통해 고생한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모습이 늘 안타까웠다"며 "간단한 방법만 알려줘도 호감 가고 믿음직한 조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강의를 기획했다"고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김광식 홍보기획계장은 "이번 미디어 트레이닝이 경찰 활동을 오해 없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