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가 궁금한가? 예술에서는 '와!' 하고 '빵' 터뜨리는 효과가 중요하다. 내 작품이 그렇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서 화랑이나 미술관의 긴 설명이 필요가 없고, 관객들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등의 단순한 반응만을 보이면 된다."

지난달 런던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데미안 허스트(Hirst·46)는 문 뒤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미술가 제프 쿤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로 불리는 이 영국 미술가는 작품만큼이나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는 1990년대 초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유리진열장 안에 모터를 연결한 죽은 상어를 넣어 움직이게 하고, 진열장 속에 구더기가 잔뜩 붙은 소머리를 집어넣고 구더기에서 변한 파리가 살충기에 의해 죽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악동 같은 모습에 미술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은 공포에 가까운 상태에 다다르지만 결국은 '희망'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허스트의 작품을 9월 3일부터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관람료 없음)에서 열리는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 특별전 'Agony and Ecstasy(고뇌와 황홀)'에서 볼 수 있다. 황소 심장을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죽음의 키스'(2005) 등 작품 6점이 나온다. 프랑수아 피노는 경매회사 크리스티, 명품회사 구찌, 이브생로랑 등을 소유한 PPR그룹 회장으로 세계적인 컬렉터다.

아무도 그의 장난기를 꺾을 수 없었다. 부하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스트는 굳이 160파운드(약 28만원)를 주고 샀다는‘신의 사랑을 위하여’모조품을 들고 사진을 찍겠다고 고집했다. 진품 가격은 5000만파운드(약 918억원)다. 벽에 걸린 그림은 허스트의 스핀(spin) 페인팅 연작 중 하나인‘녹색 그림 위에 아름답게 흩뿌려진 예쁜 앵무새’(2007). 사진은 지난달 허스트의 런던 사무실에서 찍었다. 배경 무늬는 허스트의 대표작‘도트 페인팅(dot painting)’의 색색깔 물방울을 응용했다.

―어떻게 죽은 상어, 죽어가는 파리 같은 것을 보고 희망을 느낄 수 있나.

"'죽음'이란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죽음과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삶이 더 빛난다고 생각한다."

―죽은 동물을 작품으로 써 '도살자'라 불린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난 자연사한 동물들만 쓴다. 동물이 죽으면 동물원에서 연락이 온다."

2008년 9월 런던 소더비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경매가 열렸다. 이 경매 이브닝 세일에서 머리 위에 황금 원반을 얹은 송아지를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황금송아지'가 1035만파운드(약 203억원)에 낙찰된 것을 비롯해 출품작 56점이 모두 낙찰됐다. 7054만5100파운드(약 1471억6300만원)어치. 단일작가 경매로는 세계 기록이다. 허스트는 이 경매 이후 "더 이상 포름알데히드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왼쪽)2008년 9월 런던 소더비에서 열린 데미안 허스트 작품 경매 이브닝 세일에서 1035만파운드(약 203억원)에 낙찰된‘황금 송아지’. (사진 오른쪽)허스트의 2000년작‘찬가’.

―포름알데히드 작업이 트레이드마크 아닌가?

"자기복제를 그만두고 새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다. 기존 작품을 유지 보수하는 포름알데히드 작업 전용 스튜디오와 전속 스태프는 계속 둘거다."

―2006년부터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은 구상화를 그렸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항상 겪는 일이다. 1990년대 초 처음 '도트(dot·작가는 spot이란 표현을 썼다) 페인팅'을 시작했을 때도 사람들은 너무 유치하다고 했다."

―새 작업은 뭔가?

"앞으로 5년 내에 전시를 열 거다. 1000년 전 침몰한 배에서 인양한 보물을 전시한다는 개념이다. 산호 모양 조각을 만들어 케냐 인근 바다 속에 묻은 후 꺼내는 작업을 사진 촬영했다. 전시 전까지 이런 걸 계속할 거다. 사진,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조각을 모두 전시에 내놓을 생각이다."

허스트는 2007년 6월 개인전에서 백금으로 주형을 뜬 인간 두개골 형상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5000만파운드(약 918억원)에 내놓았다. 그에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라는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은 이듬해 8월 허스트와 그의 전속 갤러리인 화이트 큐브, 익명의 다른 한 기관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팔렸다. 허스트는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현재 내가 2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품 판매 여부를 헷갈려 한다"고 설명했다.

918억원짜리 해골… 허스트가 2007년 5000만파운드(약 918억원)에 내놓은‘신의 사랑을 위하여’. 백금으로 인간 두개골 모양을 만들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았다.

―당신더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라는데?

"죽은 작가 중 가장 비싸다는 말보다 낫지."

―1년에 몇 작품 정도 하나?

"1988년 작가 활동을 시작한 이래 모두 4500점 정도 한 것 같다."

―다작(多作)이면 질이 떨어지지 않나?

"예술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미술관에서 아우라를 내뿜는 원본 '모나리자'와 많은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모나리자 엽서.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의미를 둔다."

―아들의 인체 모형 장난감을 본떠 만든 작품 '찬가(Hymn)'가 저작권 소송을 당하는 등 여러 번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미묘한 문제인데…. 먼저 허가를 구하면 일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일단 저질러놓고 해결해야 한다. 물론 대가를 치를 각오는 해야 하고."

―당신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나.

"나이가 들수록 두려워지는 것이 많아진다. 자식이 생기면서 죽음이 더 두려워진다."

허스트는 1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16세·11세·6세 된 세 아들을 두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언젠가는 할 거다. 양가 부모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 교회도 별로 안 좋아한다."

―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였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

―문제아에서 훌륭한 아티스트가 된 것은 아트의 힘인가?

"범죄도 어떻게 보면 좀 창조적인 행위 아닌가. 범죄와 아트는 둘 다 규범을 뛰어넘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하하."

―'죽음'을 다룬 작품이 매우 종교적인데, 종교가 있나.

"내 작품이 내 종교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어둠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만 나는 아트를 통해 찾는다. 종교 분쟁은 사람을 죽이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