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최종병기 활'의 주인공인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사회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던 그에게 병자호란은 삶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개인적으로 사극보다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도 ‘최종병기 활’(김한민 감독)을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영화는 병자호란이 배경이지만 ‘사극’이라기보다는 그냥 ‘액션영화’로 부르고 싶습니다. 출연자들이 조선시대 옷을 입고 옛날 활과 칼을 들었어도, 액션의 속도감이나 다이내믹함 면에서는 사극보다 현대 총격 액션 영화 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최종병기 활’이 다른 전쟁 사극과 차별성을 갖게 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영화의 핵심에 활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제목에 사람 이름이나 사건 이름 대신 ‘활’을 쓴 것부터가 유례없는 것이죠. 과거 전쟁 사극에서 활이란 주로 공성전(攻城戰·성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투) 장면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적을 향해 집단 발사했던 무기였습니다. 칼이 옛 사극의 무기들 중 ‘주연’이라면 활은 ‘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종병기 활’은 파격적으로 활을 ‘주연’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남이(박해일)는 귀신같은 활 솜씨를 가진 조선의 신궁(神弓)입니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어서 사회적 성취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불행하게 삽니다. 그런데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자인(문채원)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청나라 군인들이 쳐들어와 마을을 짓밟습니다. 병자호란입니다. 미친 맹수떼 같은 외국 병사들에게 여동생 부부가 포로로 잡히자, 남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활을 들고 적의 심장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합니다. 그는 놀라운 활솜씨로 이 땅과 자신의 여동생을 짓밟은 무리들에 대해 처절한 응징을 시작합니다. 그 싸움은 조선의 신궁과 청나라 활의 명장들이 맞붙는 '활대 활의 전쟁'입니다.

출처=활시위를 당기는 '최종병기 활'의 자인(문채원). 신궁 남이(박해일)의 여동생인 그녀는 일반적인 국내 사극 여주인공의 틀을 벗고 액션도 선보인다.

‘최종병기 활’에는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은 역적의 아들이 전쟁 속에서 억눌려왔던 자아를 분출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동생을 구하려고 죽음을 불사하는 오빠의 눈물겨운 사랑도 있습니다. 하지만 첫손 꼽을 재미는 역시 활 액션입니다.

이 영화 속 활이란 하늘을 향해 시위를 당기면 한참을 날아가던 그 장거리 곡사(曲射)무기가 아닙니다. 눈깜짝할 새 직사(直射)로 날아와 사람 살을 파고드는 이 무서운 무기는 활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부숩니다.

‘활 액션’들은 총탄 대 총탄이 맞붙는 총격액션의 여러 특징들을 벤치마킹이라도 한 듯 합니다. 궁사들은 화살의 종류와 쏘는 방법을 갖가지로 바꿔가며, ‘저격총’에서 ‘권총’까지 다양한 총의 역할을 활 한 자루로 해냅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 활은 스나이퍼(sniper·저격수)의 저격총처럼 장거리 정밀 조준 사격에 쓰입니다. 특히 남이가 그렇게 쏩니다. 그는 활 시위를 끝까지 당기고는 반드시 손에 쥔 화살의 끝을 한번 비틀었다가 놓습니다. 이 특유의 곡사(曲射)로 화살의 탄도가 휘어져 날아가게 함으로써 적들이 날아온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게 합니다. 현대의 저격수들이 발사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고 소음기를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시위를 팽팽히 당기는 순간부터 함께 팽팽해지는 관객들의 긴장감은 저격총의 방아쇠 당기는 순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욱 정밀하게 조준 사격할 때, 조선의 비밀병기라는 ‘애깃살’도 등장합니다. 남이는 두 뼘도 안돼 보이는 짧은 애깃살을 대나무 통에 넣어 발사하여 적의 종아리를 끊어 버립니다.

이 영화에서 활은 또한 큰 파괴력을 가진 산탄총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청나라 명궁인 쥬신타(류승룡)가 쓰는 육량전(六兩箭)이 대표적입니다. 뽀족한 화살촉 대신 끌처럼 넓적한 쇳덩이가 달린 이 화살은 목표물에 꽂히는 게 아니라 목표물 자체를 부숴버립니다.

출처='최종병기 활'의 후반부에서 조선 신궁 남이(박해일)을 추적하는 쥬신타(류승룡)등 청나라 정예부대원들.

숲에서 벌어진 두 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활싸움’에서는 활이 근거리 직사(直射)무기가 됩니다. 양쪽 병사들은 ‘엎드러지면 코 닿을 거리’의 상대를 향해 현대의 소총이나 권총처럼 활을 쏩니다. 종반부에서 남이와 쥬신타가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 활을 겨누는 대목은 서부극에서 암흑가 영화에까지 반복되고 있는 권총 대결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마디로, 활이라는 무기의 모든 활용법이 이 영화 속에 모두 있는 듯합니다.

사극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으면서도 동서고금 여러 영화 장르의 흥미로운 요소들을 작품 안에 녹여낸 것도 이 영화의 독특한 맛입니다. 일대일 대결을 많이 묘사한 전투장면들은 무협액션 영화적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납치된 연인을 찾기 위해 사나이들이 말을 달리던 서부극이나, 포로로 잡힌 전우를 구해내기 위해 연합군 특공대가 독일군 부대에 침투하는 2차대전 영화도 연상시킵니다.

그러다보니 ‘최종병기 활’이 다른 영화를 ‘너무 많이’ 참고한 것 아니냐는 언급도 있습니다. 외적에게 끌려간 젊은 전사가 고향의 아내에게 돌아가기 위해 죽음의 늪 지대를 통과하는 미국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 멜 깁슨 연출)와 닮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창성 없는 베끼기가 아니라, 활을 중심에 놓는 참신한 설정의 바탕 위에, 다른 영화들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면 모방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개봉되는 여름 극장가에서 ’최종병기 활‘이 6일만에 관객수 160만명을 돌파하며 주말 극장가 1위를 차지한 것도 ’뉴 스타일‘ 활 액션에 대해 관객들이 합격점을 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블로그] 최종병기 활, 봐야할까? 말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