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이 만주족의 장백산이고,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니요? 중국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네요."
지난 10일 백두산 천지를 뒤로한 채 내려오던 강찬(13·은계중 1)군은 분통을 터뜨렸다. 강군은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을 오르면서 단 한 번도 한민족의 전통이 담긴 곳이라는 설명을 보지 못했다. 중국에서 받은 안내 팸플릿에서는 백두산이라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고, 만주족의 발상지이자 중국의 성지라고만 적혀 있었다.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로 둔갑시켜 놓은 셈이다. 강군은 "백두산을 만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숙제를 안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강군은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LG가 협찬한 제150기 조선일보 청소년학교 '고구려 역사 탐방'에 참가했다. 청소년학교는 지난 1985년부터 조선일보가 시작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전국 각지의 소방관 자녀 100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지난 8일부터 나흘간 동국대 윤명철 교수, 대학생 자원봉사자 9명과 함께 중국 지안(集安), 퉁화(通化), 백두산 일대를 답사했다.
인천항을 출발해 15시간 항해 끝에 중국에 도착해서 처음 찾은 곳은 중국 지안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이었다. 6.39m에 달하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비는 학생들을 압도했다. 참가 학생들 앞에서 윤 교수의 강의가 열렸다. 윤 교수는 "광개토대왕비는 우리 민족이 좁게는 만주, 넓게는 연해주까지 무대로 삼아 활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 역사는 한반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광개토대왕비의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던 김원호(14·영주중 2)군은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 큰 비를 세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년학교 참가자들은 10일 백두산에 올랐다. 악천후로 천지를 방문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화산 폭발로 흘러나온 용암이 만든 금강대협곡(金剛大峽谷)과 지각변동으로 생긴 암석 틈새를 흐르는 제자하(梯子河)를 보며 민족 영산의 정기를 그대로 느꼈다. 11일엔 중국 단둥(丹東)에서 압록강 유람선에 탑승했다.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강행군에도 학생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진행되는 윤 교수의 강의 때도 학생들의 활발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윤 교수는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알고 만주 땅을 호령했던 고구려에 대해 안다면 우리의 미래도 변할 것"이라며 "이번 역사 탐방이 그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박 5일 일정을 마친 학생들은 12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1500여년 전 위대한 고구려 유적지를 탐방하고 돌아가는 학생들의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중 나온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박민송(15·단구중 3)양은 "이번 탐방을 통해 중국의 역사 왜곡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고구려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서 중국에 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