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프뉴스/OSEN=최고은 기자] 신부는 눈꽃같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신랑은 전통한복인 바지, 저고리에 중치막과 답호를 입는 이색결혼식은 어떨까?
청담동의 한복 숍 한복나라 남가람은 색다른 밸런스로 결혼식 의복을 맞춘 신랑신부의 경우를 이야기했다.
신부는 "결혼식에서 버진 로드를 함께 입장하는 신랑 의복이 웨딩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디자인의 한복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결혼식에 단 한 번 입는 결혼한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 행사에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한복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고 한다.
신랑 신부가 전통이 엿보인 결혼식 예복진행을 한데에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이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상상이 간다. 더구나 생각이나 의견 제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색 결혼식은 바로 그 실천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복을 세계화하자, 우리의 전통 한복을 사랑하자고는 이야기하지만, 누구 하나 국제 행사에 한복을 입고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 한편을 뿌듯하게 한다.
결혼식에 착용되었던 한복나라 남가람의 옷들은 참 잘 어우러졌다.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어울릴 수 있게 신랑의 결혼한복은 포인트 색상과 주조 색을 분리하고, 안감과 겉감 색을 대조적인 배색을 사용해 전통의 느낌을 살렸다.
이색 결혼식에 도움을 준 ‘한복나라 남가람’은 직접 생산한 고급 소재 원단을 한복에 사용해 신랑신부에게 높은 신뢰도를 얻는 한복 숍이다. 또한, 손수, 봉제가 모두 직영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디자인과 함께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색 결혼한복은 한국 전통 혼례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야 했기에, 한국복식전공 박사인 윤지원 한복나라 남가람 총괄이사의 역할이 컸다.
한편, 21세기 현재는 우리나라 결혼식 예복에서 남자는 모닝코트 혹은 턱시도, 신부는 서양식 웨딩드레스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결혼식에 서양식 예복을 입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 전통 혼례복으로, 신부는 녹의홍상, 즉 연두저고리에 홍색 치마 위에 녹원삼에 족두리를 썼으며, 신랑은 사모관대를 입었다. 녹원삼은 공주∙ 옹주의 궁중 예복이었고, 신랑이 입은 단령은 문무백관의 상복이자 일상 집무복이었다. 즉 혼례만은 평소에 입지 못했던 최고의 예복을 입을 수 있게 허용했다.
서양식 예복은 일제강점기 때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일부 식자층에서 신랑은 연미복을 신부는 흰색 치마저고리 차림에 베일을 쓰고 들러리와 화동도 참가하는 서양식 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혼례복인 사모관대나 원삼, 활옷을 입었다. 특히, 1930년대 말 서울에서는 혼례복을 종로의 주단 집에서 빌려 입기도 했다. 그 당시 대여했던 혼례복은 궁중이나 양반층의 옷으로, 신부는 화려하게 수놓인 활옷, 시아버지는 금관조복, 시어머니는 원삼을 입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 전통혼례복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걸까. 일제강점기 말, 일제에 의해 전통혼례가 금지되면서 혼례복은 간소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국민의례준칙이 발표되면서, 전통혼례는 대부분 사라지고, 예식장에서 올리는 서양식혼례가 보편화 하면서 혼례복은 완전히 서양식으로 변화했다. 전통 혼례복이었던 사모와 단령, 원삼은 폐백 때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입는 옷으로 인식되며 지금에 이른 것.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최고의 예복으로 인식되며 일생에 꼭 한번은 입고 싶은 옷이 되었다. 반면에 한복은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전통은 사그라지고 있다. 그나마 폐백 때는 입었던 전통혼례복도 폐백문화가 축소되거나 생략되면서 점점 보기 어려운 추세다.
지금의 시점에서, 전통혼례나 전통한복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현재와 어우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우리 전통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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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신랑신부 결혼식에 입는 의복이나 디자인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의 한복. /한복나라 남가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