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슈앙위 마을에선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23일 오후 8시34분. 하늘에서 '우르르 꽝'하는 벼락이 한 번 내리치는가 싶더니 시속 200㎞ 속도로 이 마을 교량 위를 지나던 열차 하나가 멈춰섰다.
불운(不運)의 시작이었다. 벼락을 맞은 중국 고속열차 ‘둥처(動車)’ D3115호는 순간 동력을 잃고 멈춰섰다. 맹렬한 속도로 뒤따르던 다른 열차는 이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결국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멈춰 섰던 D3115호는 충격을 이기지 못했고, 이 열차의 15·16번 객차 두 량은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20~30m 아래 땅으로 곤두박질했다.
◆"다섯살 배기 아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중국 국영 CCTV가 촬영한 사고 차량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승객들이 남긴 옷가지와 신발, 각종 음식과 침구류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추돌 당시 충격을 보여주듯 열차 유리창은 모두 바스라져 있었고, 강철 외벽은 마치 '구겨진 종이'처럼 심하게 파손됐다.
갑자기 멈춰선 열차에서 불안에 떨던 D3115 열차 승객들은 더 큰 불운이 곧 닥칠 것인지 그땐 미처 몰랐다. 뒤따르던 열차가 추돌사고를 내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나는 것 같은 충격이 이어졌다. 몇몇 승객들은 심한 타박상을 입는데 그쳤지만, 15·16번 객차는 이에 멈추지 않고 결국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뭔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섯살배기 아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았어요."
원저우의 한 병원에 입원했던 여자 승객 조우씨는 아들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고 중국 매체들에 말했다. 타박상을 입었지만 조우씨의 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추돌·추락 사고로 16번 객차에서만 60여명이 튕겨져나갔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사고 현장은 참혹했다고 중국 매체들은 전했다. 이번 사고로 중국 당국은 현재까지 35명이 사망하는 등 20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임신 7개월인 아내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구조대와 마을 주민, 자원봉사자 등의 협조로 사고 수습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고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 희생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들이다. 가족들은 열차 승객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고 사상자들이 수용된 병원들을 쫓아다니고 있다고 중국 반관영 인터넷통신 중신망(中新網)은 24일 보도했다.
"아내 식구들과 여행을 갔다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어요. 장인어른만 찾았어요. 다른 가족들은 모두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지금 임신 7개월이란 말입니다!"
친구를 동원해 인근 병원을 샅샅이 뒤지고도 가족을 찾지 못한 한 남성은 사고 현장 주변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중신망은 전했다.
◆필사적인 구조작전…“수혈하셨다고요? 택시비는 무료”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중국 구조대원들의 두터운 주황색 구조복은 땀으로 흥건했고, 마을 주민들과 다치지 않은 승객들, 자원봉사자들은 아예 웃통을 벗고는 구조 작전에 돌입했다. 열차 객차 안에서는 얼굴과 몸에 핏자국이 선명한 피해자들이 하나 둘 구조되기 시작했고, 인근 10개 병원 의료진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중신망은 전했다.
“중국이 위신을 걸고 건설한 세계 최고 속도의 고속열차 탈선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면서 정권이 큰 충격을 받았다”(일본 아사히신문) 등과 같은 평가도 나왔지만, 중국인들이 보여준 이번 사고 대처 능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사고가 난 마을에선 곧바로 부상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인근 병원에 헌혈 센터를 만들었다. 사고 직후 마을 사람들이 앞다퉈 헌혈에 나서면서 이내 2만L의 피가 모였다. 중국 매체 기자들은 “이 마을 헌혈 센터에는 24일 새벽 2시까지 헌혈하기 위해 300여명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고 전했다. 택시 기사들도 나섰다. 헌혈 센터에서 나오던 사람들에게 택시 기사들은 “헌혈하고 오셨죠? 집까지 ‘무료’로 모셔 드리겠다”며 밤샘 자원봉사를 펼쳤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상에는 23~24일 동안 이 사건을 알리며 “헌혈을 하자” “봉사활동을 하자”는 관련 글이 50만 건 넘게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