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트
스캇 패터슨 지음|구본혁 옮김|다산북스 | 528쪽|2만5000원
월스트리트의 금융공학자를 가리키는 '퀀트(Quants)'는 '계량분석가(Quantitative analyst)'의 줄임말이다. 전통적인 주식 투자자가 경영진의 능력이나 신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따질 때, 퀀트들은 통계 분석을 동원해서 한 기업의 주가 변동과 다른 기업의 주가 변동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아내 수익을 올린다. 이들의 목표는 알파(α)를 찾는 것이다. 알파는 시장 수익률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법칙을 뜻하는 퀀트들의 용어다.
퀀트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 헤지펀드 회사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먼(Simon) 회장이다. 하버드대 수학 교수로 일했던 그가 1988년 만든 펀드는 10년간 2500%의 누적 수익률을 거뒀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이 회사 사무실에서는 경제학이나 경영 전공자 대신 수학, 물리학, 전산학, 통계학 박사 90여명이 투자 모델을 만든다.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저자는 미국 금융계 퀀트의 계보를 추적했다. 저자가 "퀀트의 대부(代父)"로 부르는 미국의 수학자 에드 소프(Thorp) 이야기는 미국 네바다주의 허름한 카지노에서 시작한다. UCLA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MIT 수학과 강사로 일하던 그는 "카지노에서는 절대 돈을 딸 수 없다"는 고교 은사의 말에 의문을 갖고 블랙잭(카드놀이의 일종)의 진행 패턴을 컴퓨터로 분석한다. 소프는 그 결과를 1961년 미국수학협회에 논문으로 발표하고, 이듬해 '딜러를 이겨라'라는 책으로 펴낸다. 분석의 대상을 금융시장으로 바꾼 소프는 수학 기법을 동원해 평균 수익률 이상의 '알파'를 찾는 법을 연구하고, '시장을 이겨라'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다. 소프가 세운 펀드는 이후 3년간 연평균 14%의 수익을 거둔다. 같은 기간 미국 주가지수는 연평균 4% 올랐다.
퀀트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개발한 투자 전략은 1997년 러시아의 국가 부도 같은 위기 속에 부침을 겪기도 하지만 현대 금융의 뼈대를 만든다. 퀀트들은 수학을 동원해 그전까지 값을 매길 수 없고, 그래서 거래할 수 없었던 금융 상품까지 창조해냈다. 만기와 신용도가 다른 수십만 건의 채무를 하나의 증권으로 묶어 그 값을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은 퀀트들 덕분이다. 미국의 작은 주택담보대출 업체가 원금을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내준 대출은 프랑스인의 카드빚, 영국인의 학자금 대출과 하나로 묶여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저자는 2007년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책임을 퀀트에게 돌린다. "1세대 퀀트인 에드 소프가 도쿄 지진 발생, 뉴욕 핵폭탄 투하, 워싱턴 유성 충돌을 가상해서 대비할 정도로 과민한 위험 관리를 한 반면 그 다음 세대의 퀀트들은 이런 중요한 교훈을 무시해버렸다"(70쪽)고 지적했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몇 해 전, 한 퀀트가 식사 자리에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Taleb·'블랙 스완'의 저자)를 만나 탁자를 탕탕 내리치며 "블랙 스완(black swan·확률이 아주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미치는 사건)은 없을 것"이라고 한 에피소드도 소개돼 있다.
익숙하지 않은 금융 용어 때문에 책장 넘기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지만, 퀀트의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의 꿈과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퀀트의 세계가 궁금한 사람은 뉴욕타임스 기자 로저 로웬스타인(Lowenstein)이 쓴 '천재들의 실패'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까지 참여한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성공과 몰락(1997년)을 다룬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