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에 사는 로드 오쿤(61·잡지 편집장)씨가 가족들을 모두 소개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는 사실혼 관계였다 결별한 파트너와의 사이에 낳은 딸(26)과 아들(23)이 있다. 현재 아내에겐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둘(33·30)이 있다. 오쿤씨는 16년 전 아이를 원하는 여성 동성애자 커플에게 친권을 주장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자를 기증해 비록 아버지 역할은 안 하지만 딸(15)과 아들(12)을 뒀다. 이 남매를 입양했던 레즈비언 커플 중 한 쪽은 4년 전 숨졌다. 오쿤씨는 생부(生父)로서 1녀 1남, 계부(繼父)로서 2녀, 정자 기증자로서 1녀 1남을 둔 삼중(三重) 아버지다.〈〉 그가 생부로서 둔 두 자녀, 정자 기증자로서 둔 두 자녀는 사실상 서로 이복(異腹)남매이자 반(半)형제(half siblings)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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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 경로 다양화

미국의 족보(family tree)가 복잡해지고 있다. 입양·혼외출산·재혼 외에도 대리모·정자기증·동성결혼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구성·재구성하는 경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미국 인구통계에서 비혼(非婚·사실혼 포함) 가정이 결혼 가정을 앞섰으며, 많은 동성(同性) 부부가 대리모·정자기증·입양을 통해 아이를 갖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미국 내 최대 정자은행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California Cryobank)은 2009년 고객 중 레즈비언 비율이 3분의 1이었으며, 이는 10년 전(7%)보다 5배가량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자식을 가질 수 없었던 애시모어(리·로라) 부부의 사연은 복잡해진 가족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로라(38)의 친언니 제니퍼 윌리엄스(40)는 동생 부부의 마음을 헤아려 대리모 역할을 하기로 자청했고 정자를 기증받아 딸 맬로리를 낳았다. 애시모어 부부는 이 여아를 입양했다.

가족 간 관계와 호칭은 그 후 더 복잡해졌다. 제니퍼는 맬로리(4)에게 모친이면서 이모다. 동성애자인 제니퍼는 정자를 기증받아 낳은 아들 제이미슨(6)이 있는데, 제이미슨과 맬로리는 이부(異父)남매이자 사촌남매다.

숲 속에 얽힌 수풀 같은 가족관계

혈족·혼인만이 가족구성 인자였던 시대는 갔다. 현대인의 가족관계 모양새는 NYT 묘사처럼 '숲 속에 얽혀 있는 수풀'이 됐다. 가족을 구성하는 요소는 유전적(genetic)·감정적(emotional) 측면을 두루 고려해야 하고, 특히 '사망과 유산'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의학적·법률적 의미를 감안해 가족을 정의해야 한다고 NYT가 전했다.

미국 내 몇몇 학교들은 전통적으로 해왔던 가족관계 관련 수업을 건너뛰거나, 가족과 관련한 단어를 새로 익혀야 하는 외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 수업에 슬쩍 떠넘기고 있다. 이제 출생증명 서류에 출생경위(자연 출생 또는 생명기술을 이용한 출생 여부) 작성란이 생겼을 정도다. 자신이 정자기증으로 태어났음을 알거나 정자기증자가 누군지를 아는 아동들의 정체성 혼란 현상이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