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서울 홍대 앞에서 와인 바 '비나모르'를 운영한다. 매일 오전 대형마트에 들러 치즈와 고기, 채소 등 그날 쓸 식재료를 사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000종 정도인 와인 리스트를 체크해 필요한 와인을 주문하고 나면, 저녁까지는 일이 없다. 혼자 여유를 부리며 와인 전문 잡지에 보낼 기고문을 쓰고, 와인 동호회 사이트도 들락거린다. 이렇게 가게 창문 너머로 세상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지켜봐 온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나는 1972년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2001년 국가정보원에서 정년퇴직했다. 30년간 정보기관에서 지내며 겪은 일은 털어놓을 수 없지만, 나와 와인의 만남이 시작된 연원 정도는 밝혀도 괜찮을 것 같다. 국정원 시절 호텔과 관련된 업무를 많이 맡았던 것이 와인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나는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남북 교류의 현장에 있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91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나는 숙소 운영 책임자였다. 대표단 80명, 기자단 50명 등이 묵을 잠자리와 음식, 술자리 등 회담장 바깥의 모든 대소사를 총괄했다. 잡음은 항상 회담장 바깥에서 나오기 마련이어서 하나하나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970년대부터 해외 홍보 파트에서 근무하며 외국인들을 주로 상대해온 덕분에 국내 호텔 사정에는 밝은 편이었다. 호텔 사람들과 교분도 꽤 두터운 편이어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첫 회담 때 북 대표단이 신고 내려온 양말 외에는 여벌이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즉시 1인당 두 켤레씩 양말을 준비해 방마다 투입했다. 혹시라도 북쪽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조용히 일을 처리했다. 긴박한 순간도 있었다. 역시 서울에서 회담이 열릴 때였는데, 북측에서 "작은 모임을 열어야겠으니 연회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지켜봤더니 "이 방향이 북쪽이다, 사진은 여기, 음식은 반대쪽에 놓아야 한다"는 대화가 오갔다. 서울의 주요 대학마다 '고(故) 박종철 학생 추모제'가 열리던 시기였다. '설마 여기서 박종철 제사를 지내려고….' 호텔 핑계를 대고 무조건 연회장 출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였을까 싶다. 그때는 "북에서 개미가 내려와도 아무개가 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축구팀이나 경제 시찰단, 가무단 등이 내려와도 뒤치다꺼리는 모두 내 몫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는 '남북정상회담 추진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갈 정도로 바빴지만 역사적 순간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런데 모든 일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남북 교류가 끊어진 것이다.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와인에 빠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호텔 관계자로부터 "와인을 조금씩 마셔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와인을 접할 수 있는 곳은 호텔밖에 없었다.
와인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생산지의 문화와 역사, 지리, 환경 등 다양한 '스토리'를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몇몇 고급 와인을 살짝 맛본 뒤 나는 어느새 해외에 책까지 주문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조금씩 와인 맛을 내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산지와 포도 재배 방식, 역사를 배워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내친 김에 1999년에는 PC통신 유니텔에 '비나모르'라는 국내 1호 온라인 와인 동호회를 만들어 1대 시솝(운영자)을 맡았다. 2년 뒤 퇴직 후에 가게를 열면서 동호회 명칭을 가게 이름으로 삼았다. 와인 가게 사장으로 '전직(轉職)'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보기관 근무 시절에 몸에 밴 습관을 떨쳐내고 가게 주인으로서 동사무소, 구청 위생과, 세무서, 수도사업소에 드나드는 법을 새로 배웠다. 그런 아버지가 걱정되어서일까,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아들은 스페인에서 2년 동안 요리를 공부하고 돌아와 나를 돕겠다고 옆에 붙어 있다. 무척 든든하다.
나는 원래 술이 센 편은 아니다. 와인을 마셔도 두 잔을 넘기지 않는다. 유일한 사치는 1년에 3~4번 고급 와인을 맛보는 것이다. 좋은 와인은 여운이 한 달 이상 가기 때문에 자주 마실 이유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명품 와인을 맛보고 나면 명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의 느낌 같은 것이 오래 지속된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맞은 지금의 이 생활도 와인의 여운처럼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