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수 시인·소설가

전쟁은 살아남은 모든 이들에게도 불행이었다. 6·25전쟁을 휴전한 이듬해에 태어난 나의 불행도 전쟁 폐허와 무관하지 않다. 폐허는 무엇이든 부족하게 했고 모두의 삶을 버겁게 했다. 특히 식량과 땔감의 부족은 모든 사람을 늘 배고프고 춥고 힘겹게 했다.

그날 동네 형은 자신의 머리 위로 무릎 높이보다 더 높은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왔다. 열일곱 살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플 나이였다. 나는 그런 형의 몫을 지범거리다가 발길질에 차여 높은 토방 아래로 나뒹굴었다. 운명은 다섯 살 꼬마의 여린 등에 평생 꼽추로 살아야 할 멍에를 짊어지게 했다. 또 그 형에겐 생이 다하도록 죄책감이란 차꼬를 풀어놓지 못하게 했다. 전쟁은 그 운명을 벗길 만한 의사도, 병원도, 약도, 치료비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못난 아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기계총으로 원형탈모된 머리는 진물이 지걱지걱 배어 나왔다. 중이염으로 고생하는 귀에선 송장 썩는 냄새처럼 구역질이 났다. 장딴지와 팔뚝은 습진으로 내복이 진물과 엉겨 딱지처럼 눌어붙었다. 두 눈까지 늘 한쪽씩 번갈아 지짐거리며 안대에 가려져 있었다. 등 굽고 가슴 내민 꼽추에다 목 없는 키는 또래들의 배꼽에나 닿을 만큼 작았다. 못났다기보다 괴괴한 몰골이었으니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었을까? 설상가상으로 등에 커다란 종기가 곪고 하반신까지 마비됐다. 고통과 참담한 삶을 비관한 나는 열한 살에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 강하고 장한 어머니가 계셨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삶의 의지는 내게 절망과 비관을 이길 큰 힘이 되었다. 삶의 짐일 뿐인 아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장 서는 곳마다 찾아다닌 어머니의 장돌뱅이 삶이 내 고통을 이겨낼 약(藥)이 되었고, 무거운 인조견 보따리를 이고 지고 전국을 돌고 돈 어머니의 행상 길은 내 삶의 목표를 열어주었다.

혼자 앉지도 못하던 내가 4년 만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잘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지극 정성으로 해먹였던 어머니의 힘이었다. 처음엔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일어나려고 바둥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그렇게 일어서기를 날마다 거듭하며 조금씩 좋아져서 한 달쯤 뒤엔 걷게 되었다. 그것이 내게 일어난 첫 번째 기적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열두 살에 초등학교 2학년에 편입한 나는 또 다른 어려움에 처했다. 가난하고 체구도 작은 꼽추를 아이들이 그냥 둘 리 없었다. 나이로는 서너 살씩 어린 애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멸시했다. 그래서 늘 외톨이로 지내야 했고 책을 동무 삼아 외로움을 달랬다.

그날도 학교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다 울음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는 울며 들어온 나를 위로하지 않고 냉정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애들이 좀 괴롭힌다고 사내자식이 그게 무슨 꼴이니? 네가 몸이 그래서 놀리는 것을 어쩌라고 울어? 평생 울고 살래? 놀리든 말든 울지도 말고 화도 내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해. 그렇게 울어대니까 애들도 재미나서 더 괴롭히지."

처음엔 어머니의 말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아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처는 괴롭힘에 대한 완충작용을 하는 굳은살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완충작용은 사회에 나와서도 힘겨운 일을 만날 때마다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작게나마 금은방을 개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완충작용의 도움이 컸다. 그 힘으로 보잘 것 없이 시작한 금은방을 그럴듯한 규모로 키워낼 수 있었다. 금은방은 가난하고 병약했던 내게 두 번째로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러나 시기하는 세상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내게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할 일들이 많아졌다. 회의를 느끼며 또 다른 상처를 안고 금은방을 폐업하게 됐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자본도 없고 학벌도 없이 무엇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그냥 패배한 인생으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신춘문예 등단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그때 나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다시 가난해지고 고통이 따라도 마음이 행복할 수 있는 일임을 확신했다. 그동안 겪어온 모든 상처를 글 쓰는 자산으로 삼자고 마음을 다지며 시작했다. 시집과 소설집 등 네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된 것이 나의 세 번째 기적이다.

나는 내 기적이 크게 자랑 삼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엔 나보다 더 큰 기적을 더 많이 이룬 이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적이라는 드러난 결과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쉴 틈 없이 닥치는 고난을 상대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자체가 참다운 아름다움이라 여겨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