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지난 4일 밤 9시, 서울 홍익대 앞 놀이터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들 머리에 빨간색 풍선을 하나씩 매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머리에 쓴 헤드폰에 풍선을 매달았다. 아무런 음악도 없이 이들은 신나게 춤을 췄다. 무선 헤드폰에서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일런트 디스코(Silent Disco)'였다.
이들 앞엔 DJ 두 명이 음향기기로 신나게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DJ는 손놀림에 바쁘고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춤췄지만, 음악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무선 헤드폰을 머리에 쓰니 강렬한 일렉트로닉 음악이 터져 나왔다. 가끔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하거나 환호할 때 외에는 아주 조용한 야외 클럽이었다.
지난 2004년 유럽에서 시작된 '사일런트 디스코'는 작년 7월 국내에 상륙했다. 이 파티는 "시간에 상관없이 야외에서 댄스를 즐기려고" 만들어졌다. 무선 헤드폰은 선착순으로 나눠주며 입장료는 없지만 원하는 만큼 기부금을 낼 수 있다. 사람들은 1000~1만원까지 자유롭게 기부금을 내고 헤드폰을 받아갔다. 헤드폰은 반경 100m 가량까지 수신되며, 음량도 각자 조절할 수 있다. 이날 준비된 무선 헤드폰 320개는 1시간 만에 동이 나 버렸다. 춤추는 사람들은 20대가 가장 많았지만,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제가 클럽 문화를 좋아하는데 담배 연기를 너무 싫어해요. 그래서 야외 댄스파티를 열고 싶은데 소음 민원 때문에 안 되고… 그러다가 '사일런트 디스코'를 알게 됐습니다." 이 파티의 주최자인 '상상공장' 류재현(46) 대표의 말이다. 그는 "내년 여수 엑스포에도 초청받았다"며 "앞으로 헤드폰에 3D 안경을 끼고 3D 영상을 보며 춤추는 파티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일런트 디스코는 부정기적으로 열린다. 홈페이지(www.silentdisco.co.kr)에서 공지하기도 하지만, 이날처럼 트위터로 '번개 파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평일의 경우 200~300명, 주말엔 연인원 600~700명가량이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춘다. 지난 4월엔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소음 신고를 받고 왔다"는 경찰은 "사람은 많은데 조용하네"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른 곳을 단속하러 갔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이모(33)씨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클럽이 홍대 앞에 한 곳 밖에 없다"며 "야외 클럽인 사일런트 디스코엔 매번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인 마이크 슈워츨(24·영어강사)씨는 "한국에서 사일런트 디스코를 처음 알았다"며 "무료인 데다 볼륨을 내 맘대로 조절하니 대화도 할 수 있고 좋은 날씨에 야외에서 놀 수도 있어서 무척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