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의 손놀림은 거침없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까까머리 열한 살인데, 음악에 대해선 놀랍도록 냉정하다. "난 연주를 많이 해도 안 틀린다"고 하면서, 첼로를 연주하는 친형에겐 "한계가 있다. 구제불능"이라고 한다. 체코 보후슬라브 마르티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할 때도 아버지뻘 연주자들에게 '겁 없이' 말한다. "목관 파트가 처져요, 음도 놓쳤고. 그래선 안 되잖아요."

첼리스트 출신 장징웨이(張經衛) 감독이 만든 '소년 KJ'는 홍콩의 피아노 신동 황가딩(黃家正·약칭 'KJ')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7년에 걸쳐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자칫 TV에 즐비한 '신동 소개' 프로그램으로 전락하기 쉬운 소재지만, 영화는 KJ의 11세 때와 17세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과감한 편집으로 90분 내내 극영화와 같은 긴장감을 유지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고등학생 KJ 역시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학교 대표로 각종 음악대회의 상을 휩쓸고, 학교 안에서는 지휘를 맡아 후배들과 동급생들을 이끈다. 무엇보다 멋지게 자랐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키도 훤칠하다. 외모부터 까칠함까지 일본 음악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치아키 선배'를 연상케 한다.

영화는 피아노 천재 소년 KJ가 주변 인물과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하나씩 벗겨 내며 전개된다. 6개 소제목 중 첫 번째는 KJ의 지도교사 '낸시 루'. KJ는 오로지 음악과 자신만을 생각하지만, 낸시 루는 세상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KJ는 "왜 연주가 엉망이냐"며 후배들을 다그치지만, 낸시 루는 "망치고 실수할 때 한 걸음 더 발전하는 것"이라며 제자들을 다독인다.

영화는 선생님을 시작으로 형과 여동생, 친구, 학교, 아버지까지 KJ의 인간관계를 다층적으로 기록한다. 똑같이 연주자의 길을 걷지만 KJ의 천재성에 주눅 들어 지내는 형과 여동생, 헌신적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지만 정작 아들과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따라가다 보면 KJ의 천재성이 서로에게 드리운 그늘을 느끼게 된다. 학교를 대표해 친구들과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서도 "우승이 아니라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KJ 역시 점점 '음악이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고민이 깊어진다.

다큐 영화가 심각한 사회 이슈나 자연의 모습만을 다룬다고 생각했던 관객은 '소년 KJ'를 통해 인물 다큐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러닝타임 내내 흐르는 클래식 음악이 주는 기쁨도 쏠쏠하다.

지난해 대만 금마장영화제에서 최우수다큐상·편집상·음악상을 받는 등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영화를 본 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여전히 공연장과 TV를 오가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KJ의 최근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원제 'KJ:Music & Life 음악인생(音樂人生)'. 16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50초간 검은 화면 속에 들리는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실내악. 밝아진 화면 속 연주를 마친 KJ의 표정

#대사
"인간은 왜 태어나고 왜 존재하죠? 왜 난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손가락은 왜 움직이는 거야?" (11세 KJ가 던지는 인생의 질문)

#이런 분들에게 추천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선배를 현실에서 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