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은밀히 모이는 ‘비밀의 회담’이 올해도 곧 개최된다. 이 모임에선 전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 100여명이 비공개로 모여 “지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까지 알려졌다. ‘빌더버그(Bilderberg) 클럽’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 BBC 온라인판은 8일 "전 세계 지도층이 대거 참석하면서도 그 회담 내용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빌더버그 클럽 모임이 9일 스위스의 한 스키 리조트에서 나흘 동안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은밀한 이 모임의 정체는…
스페인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에스툴린(Estulin)이 펴낸 책 '빌더버그 클럽' 등에 따르면, 빌더버그 클럽엔 전 세계 정치·경제·군사·금융·언론 등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인사들이 매해 초호화 호텔 등을 정해 모인다. 철저한 비공개 회담이다.
빌더버그란 모임 이름은 1954년 이 모임이 네덜란드 빌더버그에서 처음 열린 데서 시작됐다. 당시 네덜란드 왕자 베른하르트와 아이젠하워, 벨기에 총리 등 세계 유수의 실력자들이 "또 다른 세계 대전을 막자"는 취지에서 이 모임을 시작했다.
올해의 빌더버그 클럽 모임은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Kissinger)와 유럽연합(EU) 부통령을 지낸 비스카운트 다비뇽(Davignon)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이 클럽 모임에 참여했다고 알려진 인사들은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영국 찰스 왕세자 등 유럽의 왕족, 전 세계 대기업 CEO 등이다.
이 모임 존재 자체는 이미 비밀이 아니다. 다만 워낙 회담 내용이 비공개로 진행돼 이 클럽 모임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이 모임 내용에 대한 어떠한 언론 보도도 허용되지 않는다. 모임 참석자들에게도 누가 참석하는지는 회담 개최 직전에야 통보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밀주의 탓에, 빌더버그 클럽을 삐딱한 시각으로 보는 음모론자들은 “빌더버그 클럽은 국가의 주권(主權)을 빼앗고, 세계 유일 정부를 수립해 전 인류를 노예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미 정부와 세계주의자의 비리를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해온 미국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알렉스 존스(Jones)도 빌더버그 클럽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빌더버그 클럽이 전 세계 80% 인구를 죽일 방법을 찾는 모임"이라며 "그들은 무자비한 악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빌더버그 클럽을 ‘원수’처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타임 지의 컬럼리스트 데이비드 아로노비치(Aaronovitch)는 “빌더버그 클럽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때때로 먹는 저녁 모임 정도’로 규정한다”고 BBC는 전했다.
‘전 세계 수뇌부 같은 조직이 존재하며, 이들이 실질적으로 지구를 움직인다’는 식의 음모론자 시각은 16세기 계몽주의 사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BBC는 분석했다. 당시 야만인을 개화시킨다는 목적으로 권력자들의 비밀 모임이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심지어 미국 9·11 테러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러 조작한 것이란 해석까지 붙이곤 한다.
음모론자들의 사고는 ‘반(反)유대주의’와 연계되기도 한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이 종종 ‘완전한 억측’이란 사실이 증명되지만,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이 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활동한다”는 생각을 하며 빌더버그 클럽 등에 대해 신화적인 ‘환상’을 계속 부풀린다는 것이다.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크리스 프렌치(French)는 “주류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소외를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조종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보상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모임으로 알려진 빌더버그 클럽도 음모론자들의 생각처럼 이 세상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아니고, 주류 문화에서 소외된 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다만 전 영국 외무장관이자 빌더버그 클럽 공동 창립자인 데니스 힐리(Healey)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빌더버그 클럽과 같은) 비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실질적인 이익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지만, 최고의 리더들이 툭툭 내뱉는 말이 전 지구적 아젠다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