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텍 제국(1325~1521년)에선 산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이 성행했다. 스페인 군대를 따라간 수사(修士)가 현장을 목격했다. '사제가 돌칼로 남녀의 심장을 도려내고 나면, 군중이 희생자를 불에 구워 먹었다'고 한다. 신전엔 13만6000개의 인골이 있었다.
▶잉카에선 1500년대에 이르러 사람 대신 동물을 희생시켰지만 왜 아스텍에서만 인신공양이 남았을까. 서양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스페인 제국이 무력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과장했다고 한다. 음식 문화를 연구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인구 증가와 식량 고갈이 충돌할 때 해결책은 전쟁·피임·유아 살해지만, 아스텍은 인신공양과 식인 풍습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고대 문명권에선 왕권이 강화되자 인신공양이 순장(殉葬) 풍습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선 진시황이 죽자 아이를 낳지 못한 후궁들은 전원 산 채로 묻혔다. 한반도에선 부여를 비롯해 삼국 시대 순장 기록이 전해온다. 2007년 경남 창녕 가야고분군에서 무덤 주인과 함께 묻힌 4명의 유골이 나왔다. 법의학 기법으로 조사했더니 열일곱 살 소녀도 있었다. 사랑니도 다 자라지 못한 채 묻혔다. 신라는 6세기부터 순장을 없앴다. 지금껏 신라의 인신공양 논란은 8세기 에밀레종을 두고 벌어졌다. 학계에선 에밀레종 전설이 '삼국유사'를 비롯해 어떤 역사서에도 없기에 후대에 지어졌다고 본다. 과학적으로도 에밀레종에서 사람 뼈의 주성분인 인(燐)이 검출되지 않았다. '청동이 사람의 수분을 흡수하면 좋은 종이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이 들어설 자리를 발굴했더니 깊이 10m가 넘는 우물 밑바닥에서 9세기 무렵 어린이 유골이 나왔다. 키 123㎝에 나이는 7~8세로 추정됐다. 두개골 함몰 흔적이 있기에 우물 입구에서 머리부터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소·닭 뼈, 제기(祭器)가 함께 나왔다. 박혁거세가 우물가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해서 우물을 신성한 곳으로 여긴 신라인들이 아이를 바쳤을 것으로 학계에선 추측한다.
▶우물에 빠진 어린이 유골은 8일부터 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신라 왕실은 기우제(祈雨祭)를 올리거나, 체제 안정을 빌려고 어린 희생양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던져진 우물은 말이 없지만 끊어질듯 이어지는 아이의 울음이 1200년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