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의 연인이 칸의 '여신(女神)'이 됐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에 출연해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커스틴 던스트는 우리에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의 여자주인공으로 익숙하다. 그가 이번에는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가운데 우울증에 걸린 여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콧대 높은 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2년 미국 뉴저지 태생인 던스트는 이제 29세지만 소녀 시절에 이미 '어린 여자의 모습을 한 성격파 배우'였다. 세 살 때부터 TV광고에 출연했고 아홉 살에 우디 앨런 감독의 '뉴욕 스토리'로 영화에 데뷔했다. 그는 12세 때 브래드 피트 주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출연, 영원히 늙지 않는 어린 여자 뱀파이어의 영악하고도 슬픈 모습을 그려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내면에 담긴 엄청난 세월을 표현해냈다"(영화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찬사를 들었다.
던스트는 그동안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로빈 윌리엄스와 어드벤처 영화 '주만지'에 출연하는가 하면 이번 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정치 풍자 영화 '왝더독'에도 나왔다. 성인이 돼선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브링 잇 온'의 여자 주인공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면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처녀 자살소동',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처럼 작품성 있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던스트는 그동안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평을 들으면서도 아카데미나 세계 주요 영화제에선 상복이 없었다. 2005년 인디펜던트지가 "소피아 코폴라나 카메론 크로우처럼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같이 일하고서도 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던스트는 "난 이 일(연기)을 꽤 오래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상을 안 받아도 된다. 상을 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멋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서른도 되기 전에 세계 최고 권위 영화제에서 연기력을 인증(認證)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