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렌스 말릭 감독

칸의 선택은 결국 '은둔(隱遁)의 영화 천재'였다. '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로 제64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국 테렌스 말릭(68) 감독이다.

말릭은 자신의 모습을 절대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시상식장은 물론 어떤 공식 행사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생활도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황금종려상은 공동제작자인 빌 폴라드가 대신 받았다. 폴라드는 "말릭은 무척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다. 그는 작품으로 얘기하고 싶어하며 (대중 앞에 서지 않는 게) 자만심이나 명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말릭은 대표적인 '지성파' 감독이다. 옥스퍼드대와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기자를 거쳐 한때 MIT에서 철학도 가르쳤다. 그런 그를 평론가들은 "시공간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영상을 형상화하는 미국의 대표적 예술영화 감독"이라고 평하지만 관객들은 "영화가 너무나 어렵다"고들 한다.

이번 수상작 '더 트리 오브 라이프'도 "일반 관객들에게는 난해하다"는 평이 많다. 등장 인물들의 대사보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의 목소리가 핵심 역할을 하고, 대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장면이 한 시간 정도 지속되면서 브람스·말러 등의 클래식 음식이 흐르는 실험적 장면을 담았다. 영화 주연을 맡았던 브래드 피트는 "말릭은 삶의 이면에 담긴 진실을 포착하기를 좋아한다. 이 영화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라고 했다.

말릭은 1973년 '황무지'로 데뷔한 뒤 지난 38년 동안 만든 영화가 5편밖에 안 되는 대표적 과작(寡作) 감독이다. 그러나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1979년 리처드 기어 주연의 두 번째 영화 '천국의 나날들'은 그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줬다. 이후 20여년 만에 내놓은 '신 레드 라인'은 전쟁을 개개 등장인물이 성찰적인 독백을 하는 준(準)다큐멘터리적 영상기법으로 다뤄 베를린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1999년)을 받았다. 2011 칸의 최고상은 그에게 이미 정해진 길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