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19일 전 세계 동시개봉을 앞두고 각국에서 높은 예매율을 기록 중인 가운데,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두 명의 여자 해적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주인공은 메리 리드(Mary Read)와 앤 보니(Anne Bonny). 이들은 17세기에 같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누비며 전세계 무역선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메리 리드가 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을 담은 영국의 삽화.

◆남자로 길러져 해군으로 활약하다 해적이 된 메리 리드
메리 리드는 1680~1690년 무렵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배의 선장이었다.

리드는 어린 시절부터 사내아이의 옷을 입어가며 철저하게 ‘남자’로 길러졌다. 어머니가 시어머니로부터 양육비를 계속 받기 위해 아들이라고 속인 것이다. 그는 자라서 제복을 입는 남자 점원으로 취직했고, 뒤이어 선원으로 고용됐다. 거친 바다 생활에 적응한 리드는 영국 해군에 입대, 네덜란드·오스트리아군과 함께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전투에서 남성 못지않은 활약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 과정에서 그는 한 네덜란드 병사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군에서 나온 그는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에 정착해 여관을 차리고 생애 처음으로 여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다시 남자의 인생으로 돌아간다. 네덜란드 해군에 입대한 것이다. 하지만 평화가 계속되면서 군인의 입지가 좁아지자 그는 군문(軍門)을 나와 서인도로 향하는 무역선을 탄다.

그의 해적 생활은 1718년 무렵 이 무역선이 해적선에 붙잡히면서 시작된다. 해적들이 리드의 오랜 군인 경력을 인정해 자신들의 동료로 끌어들인 것. 1720년 그는 ‘칼리코 잭’(Calico Jack)이라는 악명높은 해적 선장의 무리에 가담한다. 그 무리에는 또 다른 여자해적 앤 보니가 타고 있었다.

앤 보니.

◆해적선장인 남자친구 따라 해적이 된 앤 보니
앤 보니는 영국 코크주에서 저명한 변호사와 그의 하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사생아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고, 결국 가출을 선택한다.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지만 불 같은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집을 나와 술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앤은 손님으로 찾아온 해적 칼리코 잭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이어 해적선에 동승한다.

후에 칼리코 잭은 해적으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그의 성공 뒤에 머리가 좋았던 앤의 조언이 있었다고 믿는다. 앤은 해적선에서 자신의 성별을 숨긴 채 헐렁한 남장을 하고 거친 일을 도맡아했다.

해적선 안에서 둘의 정체가 탄로 난 것은 메리가 이 배에 합류하면서다. 같은 처지의 두 여성은 금방 서로의 정체를 알아봤고, 단짝이 됐다. 그러자 자신의 연인이 새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한 잭이 둘을 추궁한 끝에 메리 역시 여성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은 모든 선원이 그들이 여자임을 알게 됐다. 그러나 앤의 막강한 영향력 덕에 다른 해적 선원들도 앤과 메리를 결국엔 동료로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자보다 거칠었던 두 女해적의 최후는…
두 여성을 실은 해적선은 1720년 해적 사냥꾼 조나단 바넷 선장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는다.

자메이카 서해안에서 다른 영국해적들과 술 파티를 벌이던 해적들은 바넷 선장의 공격을 받고 혼비백산해 도망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술에 취하지 않았던 메리와 앤은 분노에 가득 차 총을 난사하며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바넷의 선원 한 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둘을 포함해 10여명의 해적이 붙잡혔다.

해적들은 자메이카의 스페인타운으로 끌려가 그해 11월28일 사형을 선고받은 뒤,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단, 앤과 메리 두 사람만은 제외됐다.

둘은 법정에서 “임신했고, 출산이 임박했다”고 호소한 끝에 사형 집행을 미룰 수 있었다. 기록에는 메리가 이듬해인 1721년 숨진 것으로 나와있고, 사인(死因)은 ‘출산으로 인한 고열’로 돼 있다.

앤의 경우, 그 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구전(口傳)으로는 그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오래도록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