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와 'work', 두 단어의 뜻이 어떻게 다르다고 했죠?"

지난 11일 오후 8시쯤 울산대학교 문수관 10-203 강의실. 칠판 앞에서 분필을 든 조현승(24·경영학과 3년) 교사가 어머니뻘 되는 40~50대 주부 학생 5명을 앞에 두고 명사, 동사, 형용사 등 영어품사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중년의 주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론 갸우뚱 거리며 '대학생 선생님'의 설명을 빠짐없이 교재에 필기했다.

울산대‘문수야학’동아리방에 최근 모인 대학생 교사들. 이들은 회비를 내 야학을 운영하고 있지만 학교로부터 봉사활동점수도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해“억울하면 야학 못하죠”라며 웃었다.

조 교사는 울산대 동아리인 '문수야학' 소속이다. 문수야학은 배움의 기회를 잃었거나 시기를 놓쳐 뒤늦게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봉사동아리다. 조 교사 외에도 문수야학에는 28명의 교사가 더 있다. 2·3학년이 22명으로 주축이지만, 졸업을 앞둔 4학년생도 6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문수야학의 학생은 중등반 4명과 고등반 6명이다. 중등반의 10대 1명을 빼면 모두가 40~50대 주부와 직장인들이다. 수업은 주5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 동안 이뤄진다. 과목은 모두 6개.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국사 등 검정고시에 필요한 것들이다. 과목당 2~3명의 교사들이 돌아가며 매일 2과목씩 수업을 진행한다.

문수야학 이우영(25·일본어학과 3년) 교장은 "주부들은 거의 빠지지 않는데 직장인들은 업무가 바빠 늦거나 빠지는 경우가 잦아 안타깝다"고 했다.

문수야학은 올 3월 50대 주부 대학생을 배출했다. 작년 고교과정 검정고시 합격자 3명 가운데 1명이 울산의 춘해대학 사회복지학과 새내기 대학생이 됐다. 이 교장은 "검정고시를 통과한 졸업생이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가 가장 기쁘고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문수야학은 1993년 '반딧불야학'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뒤 올해로 19년째다. 그동안 강단에 섰던 대학생 교사가 200명을 넘고 이들에게 배운 중년의 졸업생도 500명을 훌쩍 넘었다. 초기엔 강의실을 구하지 못해 대학 건물 지하 복도에 간이 칠판을 걸쳐놓고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학교 강의실을 한 학기 단위로 빌려 사용한다. 국사를 가르치는 정은진(20·사회과학부 2년) 교사는 "지금도 힘든 고비 때마다 초창기의 야학정신을 잊지 말자며 서로를 다독거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재정문제가 고민거리다. 그동안 분기별로 교사들이 내는 1만원씩의 회비와 졸업한 야학교사와 졸업생들로 구성된 '야후회(야학을 후원하는 모임)'에서 분기별로 20만원가량씩 지원해주는 것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야후회 내부사정으로 지원금이 중단되면서 교재 제작비조차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이우영 교장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셈"이라며 "하지만 강의를 끝낸 뒤 교단을 내려올 때 가슴 속에 꽉 차오르는 자부심과 보람이 야학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야학동아리 지도를 맡고 있는 울산대 임규찬 교수(체육학과)는 "야학은 의지뿐만 아니라 능력도 필요한 일"이라며 "문수야학 교사들의 순수한 동기와 열정은 그들 스스로를 진정한 엘리트로 가꿔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