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업실을 일산으로 옮겼다. 말하자면 월세며 전세가가 끝도 없이 오르면서 서울에서 일산까지 흘러간 것이다. 일산은 오피스텔의 도시다. 물론 일산은 아파트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내게 그곳은 대한민국에서 대형 오피스텔이 가장 많이 밀집한 기이한 독신자들의 도시였다. 모든 편의시설은 반경 50m 안에 거의 전부 포진해 있다. 다양한 종류의 밥집, 반찬가게, 24시간 편의점, 테라스가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카페와 미용실, 네일 케어숍….

이 기이한 앨리스의 도시에선 혼자 걸어 다니는 독신 남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이 든 부부나 가족들은 이곳에서 거짓말처럼 증발한 것 같았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개 혼자이거나, 사람보단 개와 함께 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적어도 50m마다 등장하는 동물병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아챌 수 있었다. 이토록 많은 동물병원의 숫자는 이곳에서 사는 신도시 독신자들의 외로움의 숫자와도 일치했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 부착된 경고문구가 '개를 키우지 맙시다'가 아니라, '개의 배설물을 주의합시다'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곳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금지된 사항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초록 물고기'는 '일산'이 신도시화 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는 막 군대를 제대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조직폭력배의 세계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폐기처분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엄마를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르던 스물여섯 청춘의 모습은 경계선 위에 서 있던 1996년 일산의 모습과도 겹쳐지는데, 막동이네의 허름한 집과 일산 신도시가 함께 있는 풍경은 개발이란 이름으로 한 세계가 파괴되어 가는 단면을 영화적 프레임으로 포착해 잘라내듯 보여주고 있다.

개발되기 이전의 일산 주민이었던 스물여섯 살 막동의 꿈은 가족들과 모여 작은 식당이라도 차리는 것이다. 그런 그의 꿈이 신기루처럼 날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지지리 가난하고 복잡한 가정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신도시인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 지역에는 대규모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영화‘초록 물고기’는 일산이 변해가는 모습을 배경으로 삼았다.

과거 인터뷰에서 '초록 물고기'의 감독 이창동은 막 지어지기 시작한 일산의 아파트 단지들이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 아틀란티스 대륙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첫 번째 의문은 그 거대한 신세계에 살면서 이 넓은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국가의 도시정책에 의해 지워진 과거와 새롭게 만들어진 현재, 그 사이에서 진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트럭 노점상을 하는 형과 함께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돌며 막동이가 "형, 옛날에 여기 우리 땅 아니야? 옛날에 여기가 아카시아 천지였는데…"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 간극과 진동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신도시에 대한 내 첫인상은 막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달리던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어마어마한 아파트의 위용이었다.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한꺼번에 지어질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극심한 공포심을 느꼈었다. 청소년기를 서울 반포와 잠원동의 5층과 12층짜리 아파트 사이에서 지냈던 나로선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던 분당의 모습이 꽤 폭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막동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삶은 질기게 이어진다. 막동의 죽음 이후 가족이 마련한 식당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손님으로 찾아온 배태곤을 극진히 대접하며 "잘해 드릴 테니까 또 오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부조리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불편한 지점이 결국 스물여섯 살 김막동을 죽이면서까지 이창동이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영화를 본 후, 다시 일산의 아파트 속을 걸어갔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오피스텔 군락지와 논과 밭 위에 지어진 신도시의 거대한 허파인 호수공원의 정원을 걸어간다. 호수공원에는 꽃 박람회를 구경하기 위해 온 행락객들로 북적이고,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 위에는 봄의 연둣빛 나무들이 가득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이곳이 아파트가 아니던 시절, 이곳에 인공호수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 하늘거리던 버드나무 집 사이에서 살던 논과 밭의 주인들은….

●초록 물고기: 막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행 기차에 오른 막동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나이트클럽 가수 미애를 통해 조직폭력배 배태곤 밑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배태곤의 어릴 적 보스 김양길이 나타나면서 그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한석규, 심혜진 주연.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