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칸 존스 감독의 ‘소스 코드(Source Code)’엔 ‘SF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홍보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인셉션(Inception)’이나 ‘매트릭스’(Matrix)같은 영화를 닮았을 것 같은 예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느낌은 그런 예상과 거리가 있습니다.
핵 테러를 막기 위해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악당과 사투를 벌인다는 점에서, ‘소스 코드’는 SF 액션의 기본 골격을 가졌지만, ‘요란 뻑적지근’하고 눈이 핑핑 도는 SF와는 차별되는 맛을 가졌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의롭고 착하고, 게다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캐릭터들이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SF 액션의 외양을 갖췄으면서도 몇 가지 점에서 최근 SF영화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의 이미지부터가 다릅니다. ‘차갑고 강한’ 초인적 액션영웅이 아닙니다. ‘소스 코드’에서 악당과 대결에 나서는 콜터 대위(제이크 질렌할)는 중동에서 헬기 조종사로 임무 수행 중 사실상 전사한 군인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해결하는 비상한 두뇌나, 숱한 총탄을 모조리 피해가며 적진을 초토화하는 강력함은 그에게 없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투입시킨 '소스 코드'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 콜터는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임무에 주저 없이 몸을 내던질 용기와 책임감을 가진 반듯한 남자입니다.
그런 주인공이니 이 영화를 통틀어 첨단의 무기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난사해대는 장면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는 거의 비무장, 즉 맨손으로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무기라고는 중간에 열차 보안승무원용 6연발 리볼버를 잠시 '무단 습득'(?)해 사용하는 게 거의 전부죠. 그런 콜터의 모습은 다른 SF 액션영화와 견주면 '인간의 얼굴을 한' 영웅에 가깝습니다. 제이크 질렌할은 톰 크루즈나, 키아누 리브스처럼 번쩍이는 스타는 아니지만, 판에 박힌 미남형과 다른 멋지고 착하고 섹시해 보이는 이미지여서 적역입니다.
두 번째로, 공상과학적 설정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도 ‘소스 코드’가 ‘인셉션’부류의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같은 영화의 경우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하면 ’소스 코드'는 관객의 머리에 쥐가 덜 나게 하는 편입니다. 물론 영화엔 양자역학이나 평행우주론처럼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론들이 주절주절 설명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기 위해서 이런 이론을 모두 다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시·공간 이동 프로그램 ‘소스 코드’에 따라 남 주인공이 열차 테러에 희생된 한 사망자의 마지막 8분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열차 테러범이 2차 범행으로 저지르려는 핵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아내야 하죠.
또한 ‘소스코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차별성은 SF 액션인데도 대규모 물량을 들인 액션 대결장면으로 관객을 압도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폭약, 공포탄, 휘발유를 닥치는 대로 쏟아부으며 수시로 화면에 총성과 폭발음과 철문 부수는 소리를 내는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에 테러범이 있으나 무슨 명분으로 테러하는지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영화의 핵심이 악당과의 대결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신 '소스 코드'는 다른 SF 액션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맛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스릴러 영화의 재미에 가깝습니다. 200만명의 무고한 시민을 몰사시킬 테러를 막을지, 아니면 그대로 터지게 만들지 여부가 한 남자의 용기와 책임감에 달린 상황이 긴박합니다.
열차 안에 뛰어들어간 주인공 콜터 대위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한가롭게 여행하는 각양각색 승객들 틈바구니에서 곧 대참사가 일어날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가 단 8분 안에 어떻게든 범인을 알아내려고 죽을힘을 다합니다. 시간여행은 단 한 번이 아닙니다. 한 번에 안 되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될 때까지 반복하면서 조금씩 달라져 가는 상황을 지켜보다 보면, 관객은 어느 틈에 "이번엔 또 어떻게 될까" 추리하고 긴장하게 됩니다.
더구나 SF영화답지 않게 ‘소스 코드'는 ‘사랑'의 따뜻함을 이야기합니다. 남 주인공 콜터는 열차에서 자신을 남자친구로 아는 여성과의 짧은 만남에서 많은 느낌을 갖습니다. 자신에게 한결같이 친절하고, “인생이 8분만 남아있다면 뭘 하겠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마지막 1초까지 당신과 있겠어"라고 착한 눈망울로 이야기한 여성의 마음이 콜터에게 전해집니다.
마침내 콜터가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을 위해 라스트에서 극적인 결단을 하는 대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더군요. ’소스 코드'는 전형적인 SF 액션 영화 팬들이 모두 칭찬할 영화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소스 코드'를 보는 내내 ‘SF 액션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