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주상복합아파트 51층. 한 고교생이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순간, 비상계단실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관 2명과 교육청 직원 3명이 들이닥쳤다.

224.4㎡(68평)짜리 이 아파트는 현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입구 방에는 학생 10여명이 앉아 강의를 듣고 있고, 거실에는 야경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책상이 놓여져 학생들이 자습을 하고 있었다. 큰방은 학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휴게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지난달 11일 대구 동부교육청의 불법 과외 단속 현장이다. 작년 9월부터 운영된 이곳은 학생 40여명이 다니고 있고, 1인당 50∼80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있다고 한다. 전직 학원장 출신인 김모(28)씨는 미분양이 심한 이 아파트를 월 220만원에 임대해 이곳을 차렸고, 강사 1명을 고용해 교습소로 운영해 왔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방을 개조해 강의실을 차려놓고 불법 고액과외 교습을 해오다가 최근 적발됐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심야 교습 규제 이후 대구에서 불법 고액과외 교습소가 주택가로 숨어들고 있다. 아파트나 주택을 임대해 대놓고 학원을 차리거나, 기존 학원 원장들이 제한시간 이후엔 장소를 옮겨 계속 운영을 하는 등 방법은 각양각색이었다.

대구교육청은 지난달 한 달 동안 집중 단속을 벌여 모두 23건을 적발했다고 8일 밝혔다. 교육청은 이 중 21명을 학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형사고발하고, 16명은 교습중지, 1명에게는 경고조치를 했다. 이와 별도로 신고를 하지 않고 교습소를 운영한 20명은 탈세 등의 혐의로 세무서에 통보했다. 이번에 단속된 전체 23건 중 21건이 수성구에 집중돼 있었다.

수성구 범어동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학원 바로 앞 단독주택을 빌려 야간 공부방을 몰래 운영해 왔다. 오후 9시 30분이 되면 학원 문을 닫고 학생들을 공부방으로 이동하게 한 뒤 수업을 진행해 온 것이다.

수성구 신매동의 한 학원 원장은 교습 시간 제한(오후 10시)을 피하기 위해 상업시설인 학원을 주택시설로 용도변경 신고한 뒤, 시간제한을 받지 않는 개인과외교습으로 전환해 운영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또 한 피아노 개인과외 강사는 자신이 서울대 출신이라며 학력과 경력을 속여 예술고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한 달에 230만원씩의 교습료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실제 이 강사는 지역 예술대 출신이었다.

동부교육청 이광주 평생교육지도팀장은 "대부분 학원들이 교습시간을 지켜 교습시간 제한 조치가 정착되고 있는 상황인데, 일부 강사들이 이 같은 행태를 보이며 분위기를 흩트리고 있다"면서 "앞으로 경찰과 국세청 등 유관기관과 공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정까지로 돼 있는 대구의 사설 학원 심야 교습시간은 지난 3월부터 2시간 줄어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