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의 한 폐채석장에서 십자가 모양의 나무에 못 박혀 숨진 엽기적인 ‘십자가 사망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정확한 사망경위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사망 당시 집중호우가 쏟아져 증거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일 경북지방경찰청과 문경경찰서에 따르면 김모(58·택시 운전사)씨 지난 1일 오후 6시쯤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한 폐채석장에서 예수의 죽음을 재현한 듯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1990년대에 이혼했고,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이 있다. 부인 및 자식들과는 연락을 모두 끊고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 김씨 시신은 건조한 봄날씨 탓에 미라처럼 메말라 있었다. 하의 속옷만 입은 채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은 세로 180㎝, 가로 187㎝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다. 다리와 목은 줄로 묶여 있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선 흉기에 찔린 상처도 발견됐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도 처형 당시 오른쪽 옆구리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 전문가 감식 결과 김씨의 오른쪽 옆구리에 난 상처가 각도, 방향을 보면 스스로 흉기를 이용해 찌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씨의 두 손은 공구로 구멍을 뚫은 뒤 십자가에 미리 박아 놓은 다른 못에 손을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현장에는 구멍을 낼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동 드릴도 발견됐다. 김씨의 발밑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 십자가 제작 방법과 십자가에 매는 방법이 적힌 A4용지 3장이 발견됐다. 이 문서에는 '허리를 줄로 묶는다. 손에 구멍을 낸다. 팔꿈치를 십자가에 걸친다. 기둥에 목을 매단다' 등 십자가에 몸을 매다는 순서가 적혀 있었다.
김씨가 발견된 현장 주변에서는 텐트와 차량도 발견됐다. 텐트에는 초코파이 20개와 물통, 십자가를 만들다가 남은 나무토막, 톱, 또 다른 십자가 제작 도면 등이 놓여 있었다. 문경경찰서 관계자는 사인과 관련, “부검의사 설명에 의하면 자창(찔린 상처)과 목을 맨 것에 의한 복합 사망”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종교에 심취한 김씨가 혼자 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예수의 죽음을 모방하는 형태로 자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지만, 증거수집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관계자는 “김씨는 지난달 22~25일 사이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문경에는 억수 같은 비가 내려 증거가 많이 소실됐다”면서 “김씨가 매달린 십자가도 대패질이 안 된 거친상태여서 지문 등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부검결과는 다음 주쯤 나올 전망이다. 경찰은 김씨가 아무리 (자살) 의지가 강하더라도 스스로 자기 손에 드릴로 못을 박기는 어려운 만큼, 타살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김씨에게 원한을 품은 광신도나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에 의한 타살 가능성도 열어두고 주변인 등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