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임창용이 마침내 선동렬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임창용(35)은 지난 27일 시즈오카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9회를 탈삼진 3개로 간단하게 막으며 시즌 2세이브를 거뒀다. 이날 세이브로 임창용은 일본프로야구 통산 98세이브째를 마크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 98세이브를 수확한 선동렬과 어깨를 나란히 한 순간이었다. 선동렬은 162경기, 임창용은 171경기 만에 달성했다. 하지만 기간만 놓고 보면 임창용이 5개월하고 일주일 더 빠르다. 선동렬은 일본 진출 162번째 등판이 생애 마지막 경기였지만 임창용은 앞으로 더 많은 등판이 기다리고 있다.

▲ 극과 극의 첫 해

선동렬은 지난 1995년 12월 계약기간 2년, 계약금 1억엔, 연봉 1억5000만엔을 받는 조건으로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입단 때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야구 최고 투수의 일본 진출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데뷔 첫 해에는 고전했다. 2군으로 밀려나며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보냈다. 1996년 일본 진출 첫 해 38경기에서 5승1패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으로 무너졌다. 일본 진출 첫 해 한국인 선수 부진의 시초가 바로 선동렬이었다. 이후 구대성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 선수들이 진출 첫 해에는 쓴맛을 봤다. 임창용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랬다.

임창용은 달랐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부터 달랐다. 선동렬이 요미우리와 주니치 사이에서 스카우트 경쟁이 붙으며 몸값이 치솟은 것과 달리 임창용은 2년간 연봉 1500만엔이라는 헐값에 야쿠르트와 계약을 체결했다. 12년 전 선동렬보다 10배나 적은 몸값. 당시의 임창용은 팔꿈치 수술 후유증을 겪고 있는 그저 그런 투수로 평가됐다. 그때 삼성 지휘봉을 잡고 있던 선동렬은 굳이 임창용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임창용은 의문과 우려의 시선을 받으며 현해탄을 건넜다. 선동렬에 대한 경외의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임창용은 데뷔 첫 해부터 일본프로야구를 깜짝 놀래켰다. 데뷔전이었던 3월28일 요미우리와의 원정경기에서 이승엽을 상대로 첫 탈삼진을 뽑아내며 등장한 이후 승승장구했다. 데뷔 첫 해부터 54경기에서 1승5패33세이브 평균자책점 3.00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인 선수의 데뷔 첫해 부진 징크스를 보기 좋게 깨뜨린 투수가 바로 임창용이었다. 적어도 일본프로야구 시작을 임창용만큼 위대하게 한 선수는 지금껏 없다.

▲ 선동렬의 위엄


선동렬은 2년차가 된 1997년부터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올랐다. 첫 해 시련을 거울삼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1999년까지 선동렬은 부동의 수호신 노릇을 했다. 이기간 동안 124경기에서 95세이브를 올렸다. 지난 3년간 임창용이 거둔 164경기에서 96세이브와 페이스가 비슷하다. 경기 등판 숫자는 임창용이 더 많지만 상대적으로 세이브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야쿠르트는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B클래스에 머물렀다. 반면, 주니치는 1997년에는 리그 최하위였지만 1998~1999년에는 A클래스였다. 특히 1999년에는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선동렬은 1999년 주니치 우승 확정 경기의 헹가레 투수였다.

세부 기록을 살펴 봐도 선동렬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다. 1996년을 제외한 1997~1998년 3년간 선동렬은 124경기에서 5승3패95세이브 평균자책점 1.64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1할대(0.190),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0점대(0.92), 9이닝당 탈삼진은 10.13개로 두 자릿수에 달했다. 특히 1997년 기록한 38세이브는 한국인 투수 최다는 물론 일본프로야구 역대 공동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당시 선동렬의 나이 만 34~36세. 30대 중반이 꺾이는 시점에서 거둔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997년에는 최고 154km 강속구를 뿌리며 나이를 잊은 투구를 펼쳤다.

▲ 임창용의 도전

임창용은 만 32세에 처음 일본에 발을 디뎠다. 선동렬보다 한 살 빠르게 일본에 왔다. 올해까지 일본프로야구 데뷔 후 171경기에 나온 임창용은 7승11패98세이브 평균자책점 2.11을 기록하고 있다. 피안타율은 2할5리,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1.03이다. 9이닝당 탈삼진은 8.7개. 세부 기록만 놓고 보면 선동렬보다 조금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선동렬은 3년째를 끝으로 스스로 물러났고 임창용은 4년째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임창용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는 2010년 기록한 35세이브. 최고의 시즌도 2010년이다. 53경기에서 1승2패35세이브 평균자책점 1.46 피안타율 1할6푼3리, 이닝당 출루허용률 0.86, 9이닝당 탈삼진 8.57개를 기록했다. 1997년 43경기에서 1승1패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 피안타율 1할6푼4리, 이닝당 출루허용률 0.76, 9이닝당 탈삼진 9.81개를 기록한 선동렬에 버금가는 성적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만 34세 때였다.

하지만 앞으로 모든 기록은 임창용에 의해 갈아 치워질 가능성이 높다. 누적 기록은 물론 비율 기록도 임창용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것이 자명하다. 임창용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다. 평균자책점도 3.00-2.05-1.46으로 계속 낮췄고, 투구 내용도 놀라울 정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사이드암으로 최고 160km까지 던질 수 있는 스피드도 대단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3단 변칙 투구나 포크볼·커브의 장착은 앞으로 임창용을 더 기대케 만든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타자로 임창용과 숱하게 붙었던 이영우는 "사실 일본으로 갈 때만 해도 실패할 줄 알았다. 직구 하나만으로는 살아남기는 힘들다고 봤었다. 그런데 포크볼을 장착하고 다양한 것을 시도해서 성공하더라"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 놀라움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시즌 초반이지만 7경기에서 임창용은 2세이브 평균자책점 1.29를 기록 중이다. 첫 등판에서 안타 2개를 맞고 1실점하며 블론세이브했지만 그 이후 6경기에서 무실점에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고 있다. 피안타율 9푼1리, 이닝당 출루허용률 0.57, 9이닝당 탈삼진 12.9개. 야쿠르트도 8연승으로 센트럴리그 1위. 바로 다음 세이브부터 임창용은 한걸음 한걸음은 역사가 된다. 역사적 시즌이 개봉박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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