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정도, 후배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승리를 향한 전진뿐이었다.
27일(한국시각)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상대였던 샬케04(독링)에는 맨유 박지성(30)과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은 선수가 두명이 있다. 샬케의 오른쪽 측면 라인을 맡고 있는 공격수 헤페르손 파르판(페루)과 수비수 우치다 아쓰토(일본)였다.
우선 파르판은 박지성과 같은 팀에서 일찌감치 영광을 맛본 동료다. 둘은 2004~2005시즌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에서 함께 뛰었다. 절친이기도 했다. 이영표(알 힐랄)가 있긴 했지만 박지성은 파르판과, 마르크 판 보멀(AC밀란) 등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박지성에게 파르판은 현재 맨유의 에브라와 같은 존재였다. 우승의 환희도 함께 일궜다. 당시 팀 내 좌우 측면을 양분했던 둘은 네덜란드 리그와 FA컵 등 '더블'을 달성했다. 특히 에인트호벤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끈 핵심 멤버들로 주목을 받았다.
7년 만에 다시 그라운드 위에서 땀을 흘린 박지성과 파르판. 동료가 아닌 적이었다. 이날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박지성은 적극적인 공격 뿐만 아니라 상대 오른쪽 측면 공격 봉쇄 명령도 받았다. 1차적으로 파르판이 희생양이었다.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슈팅 능력을 동시에 보유한 파르판은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 측면을 무너뜨리는 플레이를 펼친다. 사실상 샬케의 공격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파르판은 박지성에게 꽁꽁 묶였다. 박지성은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통해 에브라와 함께 협력수비로 파르판의 장기인 빠른 스피드를 살리지 못하도록 했다. 어쩔 수없이 파르판은 박지성을 피해 중앙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샬케의 공격 밸런스가 무너졌다.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일본 교토상가 출신인 박지성은 우치다의 J-리그 선배다. 우치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우치다는 지난 14일 인터밀란(이탈리아)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이 끝난 뒤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경험이 많은 선수다. 박지성과 같은 피치에 서게 되어 기쁘다. 한 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며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박지성은 후배라고 우치다를 봐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승부의 세계였고, 설욕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카타르아시안컵 4강전(2대2 무승부, 승부차기 0-3 패) 패배를 되갚아줘야 했다. 당시 나란히 선발 출전했던 둘은 무대를 유럽으로 옮겼지만 다시 만났다. 특별한 의미도 담겨 있었다. 한국과 일본 선수가 유럽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면에서 승부욕이 강한 박지성이 지고 싶지 않은 않았을 것 같다.
예상대로 박지성이 판정승을 거뒀다. 전반 17분 우치다가 맨유의 왼쪽 측면을 파고들자 박지성이 강한 태클로 막아냈다. 박지성은 이후 왼쪽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공격을 지원했다. 우치다는 맨유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좀처럼 오버래핑을 시도하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전반 35분 박지성의 논스톱 슈팅이 우치다의 몸을 던진 수비에 막혔다는 것.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슈팅이 노이어 샬케 골키퍼에 선방에 막힌 것을 박지성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우치다의 육탄방어에 아쉽게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박지성은 혼자의 몸으로 2명의 지인을 상대하느라 평소보다 더 많이 뛰었다.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지성은 후반 23분 폴 스콜스와 교체될 때까지 8.99㎞를 뛰었다. 교체 시점까지만 따지면 맨유에서 가장 많은 거리를 뛴 기록이다. 맨유는 후반 라이언 긱스와 웨인 루니의 연속골로 2대0 완승을 거두고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박지성은 이날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 됐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