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이터를 지어주세요. 우리 마을엔 초등학생이 20명, 어린아이들이 46명입니다." 지난달 전남 완도군 노화도(島)를 찾아 미라리 주민들과 대화하던 김종식(61) 완도군수는 깜짝 놀랐다. 경로당 지원을 요청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어달라고 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말에 그는 즉각 박준영 전남지사에게 이 마을 사정을 알려 예산을 확보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어린이는 물론 청년층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던 이 마을은 요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시로 나갔던 젊은이들이 10여년 전부터 하나 둘 돌아오더니 지금은 20~50대가 183명으로 60대 이상 80명보다 2배 이상 많아졌다. 학생 수가 줄면서 폐교 위기를 맞았던 인근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다시 100여명으로 늘었다.
◆전복 양식 성공…1억 이상 매출 558가구 '부자 섬'
마을을 되살린 것은 전복이다. 완도의 주력 산업이던 김·파래·미역 등 해조류가 1980년대 들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1990년 초 이 마을 최운재(53)씨는 옛날 임금 수라상에 올렸던 귀중한 전복을 떠올렸다.
그는 6년간 혼자서 전복 양식에 몰두했고 양식에 성공할 기미가 보이자 몇몇 동네 주민들에게 "300만원씩 투자하라"고 권했다. 3년 뒤 양식에 성공한 이들은 투자비의 15배가 넘는 5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그렇게 되자 주민들은 앞다투어 전복 양식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후반 전복은 '황금알'사업이 되었고 노화도 전역과 보길·소안도 등으로 확산됐다.
최근 군에서 이 마을의 소득을 조사한 결과 126가구 중 84가구가 지난해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곳뿐 아니다. 당산·잘포·북고리 등 노화도에서는 558가구(전복 양식 522가구)가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려 완도지역 최고의 '부자 섬'으로 조사됐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섬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수억원씩 들여 지은 고급 주택이 곳곳에 들어서고, 집집마다 고급 승용차가 흔하다. 미라리에만 외국산 자동차 3대가 있다. 마을 앞 선착장에는 크레인이 설치된 작업선(1억2000만~1억3000만원) 등 120여척이 빼곡하다. 집마다 배 2척, 차량 2대는 기본이다. 선박 건조와 건축 물량이 쏟아지자 섬 안의 조선·건설업체들은 호황을 맞았다. 골프연습장 2곳과 스크린골프장도 성업 중이다. 정유승 노화읍장은 "섬 안에 노래방·음식점 등 요식업소가 78곳인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아 양식장 작업이 없는 날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경제력 회복… 인구감소 멈춰
노화도의 활력은 군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완도에서 지난해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농·어가는 1654가구. 전체 농·어가(1만7296가구) 10가구에 1가구꼴이다. 5억원 이상도 110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1571가구(95%)가 어가(漁家)로, 소득원은 전복(1172가구)과 광어(122가구)가 대부분이었다.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어민들은 도시로 떠난 자녀들을 불러들였다.
"명절에 집에 왔다가 부모님 권유를 받고 눌러앉았어요. 전복에서 비전을 봤기 때문이죠."
12년 전 귀향해 작년에 4억여원의 매출을 올린 김동수(36·한국수산경영인완도군노화읍협의회장)씨는 "장비가 좋아져 바다 일이 한결 수월해졌고, 전복은 (이전에 비해) 몇 곱절 소득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완도 인구는 지난해 말 5만4269명. 최근 5년간 평균 1100명씩 줄던 게 작년에는 32명 감소에 그쳤다.
◆군·주민 합심, 적극적 마케팅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완도 전복산업 성장에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한몫을 했다.
군청에선 전국 처음으로 '시장개척팀'을 만들어 어민들과 함께 대도시를 찾아가 '5500전복먹기(5천만 국민이 전복 500g씩 먹기) 100일운동' '전복데이(day)' 등 다양한 판촉활동을 벌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호텔·병원 등과 제휴해 판로를 넓혔다. 지난 2009년에는 군과 주민 600여명이 공동 출자해 생산·가공·유통을 아우르는 '청해진미 완도전복주식회사'를 설립, 전복산업에 날개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