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의 납치 위협에서 한진텐진호 선원 20명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시타델(Citadel·긴급 피난처)' 덕분이었다.

청해부대 소속 군인들이 한진텐진호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 선원들은 모두 선박 내 시타델에 은신해 있었다. 청해부대는 해적들이 선원들이 선박이 운항되지 않도록 한 뒤 시타델로 피난하자, 결국 선박·선원 납치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

한진텐진호 선상과 선내에서 해적의 것으로 추정되는 AK 소총 실탄 3발과 다수의 맨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매뉴얼대로 시타델로 대피하기 직전 선박의 엔진 등 모든 기관장비를 정지시키고 문을 봉쇄함에 따라, 운항 능력이 없는 해적들로선 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선원들은 해군의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

한진해운 해사그룹에 따르면 한진텐진호에는 별도의 시타델이 있는 게 아니라 선박 자체적으로 기존 시설물에 잠금장치를 보강한 형태로 시타델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요새(要塞)’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시타델의 위치나 제원 등은 보안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창고 같은 기존 시설에 외부에서 침입할 수 없도록 강력한 잠금장치를 갖춘 곳이라고 한진해운은 밝혔다.

문은 총격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두꺼운 철판으로 돼 있고 선원 모두 피난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다. 또 선원들이 2∼3일 동안 견딜 수 있는 물과 식량이 보관돼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서 교신 가능한 통신장비도 갖추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선원들이 해적 피랍 위협상황 매뉴얼에 따라 배를 멈춘 다음 신속하게 대피소로 이동해 목숨을 건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적 피랍위기 상황을 자세히 조사해 시타델을 보강하고 필요하다면 해적 출몰지역을 지날 때 무장한 보안요원을 승선시키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배에 침입하자마자 모두 대피소로 피했지만, 해적들이 대피소 천장에 있는 맨홀 커버를 열고 들어와 인질로 잡혔었다.

◆정부 2월에 시타델 설치 의무화

이에 정부는 지난 2월24일 위험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한해서 시타델 설치를 의무화하면서 이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선박설비기준을 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시타델은 선원 외의 사람이 쉽게 식별하기 어려운 장소에 강재(鋼材)로 둘러싸야 하며, 출입문은 2개를 두되 각 출입문 두께의 합은 13㎜ 이상으로 외부에서 쉽게 열 수 없는 잠금장치를 사용하도록 했다.

또 구난식량과 음료수, 응급의료구, 간이화장실, 공기공급장치를 설치해야 하며, 위성통신설비를 구비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위성통신설비의 경우 새 기준 시행일 이후 첫 도래하는 정기검사일 또는 시행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날 중 빠른 날에 적용하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한진텐진호의 경우 이미 시타델이 설치돼 있었고, 고시 이후 규정에 맞게 설비를 강화했지만 위성통신 장비는 설치하지 못했다는 게 한진해운 측의 설명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21일 "위성통신장비는 육상에 입항했을 때 설치가 가능하다"며 "따라서 5월 부산항 입항 이후 설치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한진텐진호의 경우 위성장비 설치가 안된 것이 시기적으로 고시 위반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