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밤 10시 8분. 아내의 직장동료와 함께 시흥경찰서 안으로 들어선 40대 남자의 표정은 자못 당당했다. 남자는 "시흥에서 아내를 차로 내려주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를 접한 시흥서 실종수사팀 박덕철(39) 경사는 남편의 진술에서 몇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아내를 연고도 없는 인천의 한 고가도로 밑에서 내려준 점이었다. 박 경사를 포함한 실종수사팀은 범죄를 직감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사건 당일 남편의 차량이동 경로를 따라 84곳의 CC(폐쇄회로)TV를 확인하고, 8만여건의 통화내역을 분석했다. 결국 사건발생 13일 후인 지난달 26일 남편은 체포됐고, 내연녀와 그 가족까지 공모한 살인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아내의 시신은 서울 양재동 한 과수원에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경기경찰청 및 일선 경찰서 등에서 실종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경찰관들. 오른쪽부터 시흥경찰서 박덕철 경사, 수원서부경찰서 조관제 팀장, 경기경찰청 손종욱 팀장, 이원진 경사.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2월 11일 '실종사건수사팀'을 확대 발족했다. 이를 통해 도내 41개 경찰서와 지방청 등에 161명의 전담인력을 배치해 실종사건을 직접 수사·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그 결과 지난 두 달간 접수된 3041건의 실종 신고 가운데 시흥 아내 살인사건을 비롯, 화성 초등학교 여교사 실종사건, 수원서부경찰서 내연녀 살인사건 등 모두 2462건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프닝으로 끝난 화성 초등학교 여교사 실종사건

'그녀가 향한 곳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지난달 1일 오후 7시 59분 집을 나간 뒤 다음날 화성동부경찰서로 실종 신고된 화성시 이모(28·여·초등학교 교사)씨 사건은 같은달 28일 부산에서 이씨가 신분증과 통장을 재발급 받고 휴대전화 개통 신청을 하는 장면이 CCTV에 잡히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경찰은 이씨를 찾기 위해 화성 팔봉산 등 17곳과 은신 가능지역 1200여곳 등에 헬기와 연인원 3262명을 동원해 수색을 벌였다. 또 701개 지역의 CCTV를 분석하고, 고시원·성당 등 전국 850곳에 수사 협조문을 보내기도 했다.

손종욱(43) 경기경찰청 실종팀장은 "이씨가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 왼쪽으로 가면 CCTV가 없고 도로도 개통되지 않는 곳이었고, 오른쪽으로 가면 수백대의 CCTV가 있는 번화가였다"며 "그녀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CCTV에서 사라졌고 집에서 1.8㎞ 떨어진 CCTV에 마지막 모습이 잡힌 뒤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범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 수사가 긴 시간을 끌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씨가 생활 반응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활 반응이란 전화 통화나 인터넷 접속, 현금 인출 등 사람들이 늘 하는 행동들을 말한다.

이원진(40) 경기경찰청 폭력계 경사는 "이씨가 생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아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었다"며 "과거 같으면 단순 가출로 여겼을 사건도 범죄 사실을 확인해 피해자 가족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반응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됐으면…

실종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는 피해자들이 보이는 생활반응이다. 현대인 가운데 휴대전화, 인터넷 등을 쓰지 않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생활반응 여부가 범죄 수사에 중요 근거가 된다.

조관제(52) 수원서부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은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나 온라인 게임 접속 여부 등 실종초기에 피해자 생활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며 "이런 절차상의 문제로 며칠씩 시간이 지연되면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생겨 사건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부분이 꼭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