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서기윤(40)씨는 최근 미국 폴로와 갭 홈페이지에 접속해 청바지와 재킷 등의 신상품을 구매했다. 서씨는 "한국 백화점에서도 판매하는 물건이지만, 미국 현지에 비해 가격이 많으면 2~3배나 비싸기 때문에 직접 구매에 나섰다"며 "미국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확인하고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 구매 대행 서비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위즈위드 같은 구매대행업체에서도 백화점에서 49만8000원인 청바지를 15만원, 21만원인 뉴발란스 운동화를 9만98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서씨 같은 이들은 전 세계 인터넷 쇼핑몰을 직접 돌아다니는 '해외 쇼핑족'들이다. 일부 업체들은 미국 뉴저지와 LA에 아예 자체 '물류창고'를 만들어 놓고 회원들이 주문한 물건을 대신 '받아주고' 있었다. 이용자들은 이들 업체의 창고 주소를 자신의 가짜 '미국 주소'로 이용해 아마존닷컴 등의 미국 사이트에 직접 주문을 넣게 된다.
해외 유학생이나 교포 중에도 배송 대행을 하는 이들이 많다. 김호철(가명)씨는 재작년까지 미국에 유학 중인 선배와 함께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미국 프로농구(NBA) 저지셔츠를 구매 대행해주며 한 달에 200만~3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그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아 미국 선배 집으로 배송된 물건을 우체국 EMS를 이용해 다시 한국 구매자들에게 보내는 일만 했을 뿐이다.
과거 국내 유통시장이 크지 않던 시절 미국이나 일본, 홍콩에서 소규모로 의류나 소품을 떼어와 국내에 유통시키던 '보따리상'들이 인터넷과 국제특송 서비스를 통해 부활한 셈이다.
해외 인터넷 쇼핑의 확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국제특송 물량은 지난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은 지난해 처리한 887만7000건의 국제특송 화물 중 20% 정도를 구매 대행 화물로 추정했다. 금액은 1조4664억원에 달한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서 소호몰을 운영하는 교포나 유학생들이 처리하는 화물이 정식 대행업체를 통한 것보다 많기 때문에 실제 시장 규모는 관세청에서 추정하는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비중이 커지자 최근 일부 해외 인터넷 쇼핑몰은 일정 금액 이상을 구입할 경우 한국까지 무료 배송을 해주기 시작했다.
해외 구매 대행 물량은 미국의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세일 기간에 폭증세를 보인다. 미국 주요 브랜드의 세일 정보만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도 있다. 가끔씩 일부 해외 사이트가 접속이 되지 않으면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패션 브랜드인 '갭'(GAP) 사이트가 지난 1일부터 접속이 되지 않아 봄 세일을 기다리던 이들이 애를 태웠다. 일부에선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 사이트에서 직접 갭 의류를 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수입업체의 요청으로 한국IP 접속을 차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갭 공식 수입업체측은 "미국 본사에 문의한 결과 시스템 장애로 인해 오류가 발생한 것이었다"며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이트는 7일(한국시각)부터 다시 접속이 가능해졌다.
위즈위드 김양필 팀장은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통해 현지 정보에 밝은 소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한국 판매가격이 비싸거나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브랜드를 직접 구매하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가 단순히 배송만 대행하는 건수도 매월 1000건"이라고 말했다.
'직구(直購)'를 많이 하는 제품은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되는 30㎏ 이하, 15만원 이하 제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고가인데도 세금을 피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 개인업자들은 세금을 물지 않기 위해 신상품의 가격표와 포장지를 제거하고 마치 한국의 친지에게 사용하던 제품을 보내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해외 특송 물량 증가로 통관 절차가 간소화된 틈을 타고 탈법 사례가 증가했다"며 "단속을 강화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최근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들이 운영하는 소호몰을 통할 경우, 일부 돈만 받아 놓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어도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해외에서 구입한 물건의 경우, 일종의 '계모임'에서 물건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해도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