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부키|304쪽|1만3800원
독자들에게 불편하고 거북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은 것'으로 칭송하는 긍정적인 생각, 낙관주의를 난타한다. 저자 역시 고통과 절망을 극복해내는 희망과 긍정, 낙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부터 확산된 이른바 '긍정적 사고'는 이제 '긍정병(病)' '긍정주의' '긍정교(敎)' 차원으로 진화해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지경이라고 고발한다.
보통 사람들처럼 막연한 낙관주의에 빠져 지낼 뻔했던 저자가 분노의 취재에 나서게 된 것은 본인에게 발병한 유방암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수술과 이어질 치료 때문에 기가 죽어 있는데 주변에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누군가 선의로 내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찬 것과 같다"는 경험담이 넘쳐났다. 심지어 "핵심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라는 증언까지 나왔다. 세포생물학 박사인 저자는 극도의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는 수긍한다. 그렇다고 해서 긍정적인 감정이 스트레스의 반대작용을 할 것이라는 비약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 긍정 혹은 낙관이라는 병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막상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은 '긍정'을 강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암담한 그림자 속에서 사람들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미국 통신회사 AT&T가 1994년 2년 동안 직원 1만50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발표한 당일 샌프란시스코의 직원들은 '성공 1994'라는 동기유발 행사에 동원됐다. 행사장에서 강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당신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기업들은 정리해고 대상자들을 바로 동기유발 행사장으로 안내하고 대개 제목에 '당신(You)'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동기유발서들을 안긴다. 낙담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상대로 부를 쌓는 동기유발 산업은 더욱 번창한다.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정리해고의 제물이 되고서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했다. 그건 역기능을 일으킬 뿐"이라고 말할 지경에 이른다.
이렇게 된 데는 심리학자·저술가·종교인의 역할도 컸다. 미국이 원래 낙관주의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칼뱅주의로 무장한 청교도의 엄숙함, 깐깐함이 미국문화의 바탕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였고, 결정적으로 낙관주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1952년 노먼 빈센트 필이 쓴 '적극적 사고방식'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이 책에서 필은 "자신의 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상쇄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생각을 의식적으로 소리 내어 말해 보라"고 권했다. 필의 낙관주의는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호황을 맞아 만개했다. 1997년 미국심리학회장에 당선된 심리학자 셀리그먼은 '긍정심리학'을 임기 중 역점사업으로 발표했다. 이제 막연한 낙관주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이란 근거까지 갖추게 됐다. 여기에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 같은 책은 '원하면 이뤄진다'고 속삭이고, 개신교 목회자인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힘' 등의 저서와 설교를 통해 "당신이 직업을 잃었다 해도, 문 하나가 닫혔다 해도,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어주실 것"이라며 '긍정신학'을 전파한다.
이렇게 갖가지 무기로 완전무장한 긍정주의는 이제 현실적인 생각은 '부정적'이라고 비판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여러 위험을 겪은 데 대한 '홍적세의 기억'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긍정이라는 마약에 마비돼 갔다. '해피뉴스닷컴'처럼 긍정적인 뉴스만 다루는 웹사이트가 나오고, 회사에서 '부정적'이란 인상을 주는 것은 곧 해고 우선순위에 올랐음을 뜻하게 됐다. 미국 사회는 긍정적 사고와 낙관주의에 마비돼 갔다. 결과는 참담했다. "항공기를 날게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이착륙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부주의한 학생들"에 대한 비행 학교들의 보고를 비롯해 항공기를 이용한 공격 가능성에 대한 숱한 경고가 무시된 결과는 9·11테러였다. 주택거품 붕괴 우려 때문에 '매도(賣渡)' 의견을 낸 전문가를 바보 취급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재점검하자"고 제안한 관리자를 해고한 대가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저자는 현대사에서 국민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강요한 것은 소련의 스탈린주의나 북한체제 같은 곳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상황은 역설적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주의 깊은 현실주의'다. "주의 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 우리 자신이 처한 실제 환경을 도외시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책은 미국 이야기로 채워져 있지만 다 읽고 나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2011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IMF 외환위기는 물론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모범생으로 졸업하고 이제 이웃 일본의 불행에 도움을 주며 뿌듯해하는 우리 발밑에도 낙관과 긍정의 덫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