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봄날의 주말에도 어두운 기억 속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감독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고서 영화관을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 '파수꾼'의 장점은 평론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 서사구조에 있다. 영화는 크게 기태 아버지와 기태의 친구들과의 만남을 따라 진행된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혼란을 느낀 기태 아버지의 모습을 영화 초반부에 접한 관객들 역시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기태의 죽음의 전모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동시에 관객은 영화를 통해 밝혀질 어떤 명확한 진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파수꾼'은 진실을 둘러싼 인물들 사이의 갈등,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 명확한 결말 등을 목표로 나아가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그렇기에 쉽게 취하기 마련인 서사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까 부담 느끼지 마"라고 힘없이 말하고서는 입을 다무는 기태 아버지에게서 진실을 밝히려는 굳은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신 그는 아들에 대한 기억에 매달리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질문을 던지고 있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가 차례로 만나는 희준과 동윤 역시 기태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영화는 다만 그들이 떠올리는 기태와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간 순서보다는 일화 중심으로, 인물들 간의 감정과 관계 변화에 중점을 두고 진행된다. 이러한 진행을 통해 '파수꾼'은 기태의 친구들을 그저 기태의 죽음에 대한 증언자에 그치게 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에 충실히 귀를 기울인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추리 서사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파수꾼'은 기태의 죽음이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나서 소모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기태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얻게 된 관객들은 기태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심정 변화를, 그리고 기태 뒤에 남겨진 친구들의 아픈 마음 자리를 헤아려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태와 친구들 사이의 관계가 무너진 것이 기태가 가지고 있던 관심 받고 싶은 욕망에 있었다고 다소 갑작스레 설명하려는 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라는 기태의 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란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어긋난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을 어쩌다 보니 돌이키지 못했을 뿐. 기태의 일그러진 욕망이라는 하나의 이
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을 감독이 완전히 떨쳤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사건의 해결이라는 경제적인 서사 구조를 버리고, 인물 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파수꾼'에 관객들이 공감을 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 한 때는 '파수꾼' 속 세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기태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때 우리에게는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였다. 교실과 교복 속에 갇힌 세상은 익숙해질 만큼, 그리고 학교 바깥의 세상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을 만큼 자란 그때의 우리에게 친구는 그나마 살아갈 만한 세상의 이유였다. 실없는 농담이라도 우리는 함께 있으면 온 세상이 웃는 것처럼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고, 남들은 몰라줘도 진짜 나를 안다는 눈빛을 다정히 보내는 친구 하나만 있으면 서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친구와 조금만 어긋나도 불안하고, 견딜 수 없어져서 그 틈을 성급하게 벌려 놓고야 만다. 다시 되돌아가자고 애원해보아도 이미 예전에 함께 했던 너와 내가 아니라는 사실만 아프게 확인할 뿐이다. 그게 너무 아파서, 돌아서기 직전에 사랑했던 친구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놓고야 만다. 그리고 돌아서서 혼자서 운다.
희준과 동윤은 아직도 울고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은 자라서도 어느 밤이면 베개를 적실 것이다. 그건 세 친구보다 조금 어른에 가까운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되뇌면서 어긋나는 일을 거듭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자라는 걸까? '파수꾼'은 대답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프지만, 이걸 딛고 자라나서 행복해진단다."라는 성장 영화의 메시지를 '파수꾼'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영원히 성장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새기다 보면 아주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아주 조금 더 많이 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슴 아프더라도 '파수꾼'을 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해리 청룡시네마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