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영의 영화본심] 자아는 피부다.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앙지외의 저서 에 나온 말이다. 피부가 신체 구조를 감싸듯이, 자아가 심리 구조를 감싼다는 의미다. 앙지외에게 피부는 구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 부위이면서, 자아의 기능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자아는 피부처럼 각 개인을 심리적으로 지탱해주고, 담아주고, 방어해 주고, 개별화해준다. 그리고 정보를 수용해서 통합하고, 정보를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의 초판은 1985년에 출판됐다. 자아라는 정신적 개념을 겉껍질에 갖다 놓았으니, 당시에는 용어 자체가 불경하고 전복적이었다. 그러나 앙지외가 사망하고, 책이 세상에 나온 지 25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자아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는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찬반의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는 "자아라는 것이 있다면, 눈에 안 보일 리 없잖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는 대학을 졸업한 연극영화과 여학생들이 사회에 나온 첫해를 보여준다. 유민(윤은혜)은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 혜지(박한별)와 수진(차예련)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 민희(유인나)는 유학을 결정한다. 네 명은 늘 어울려 다니는 친구다. 철없이 졸업은 했지만, 사회에 진입하는 길은 멀어만 보인다. 초조함 속에서 그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다. 싸우고 멀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화해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한 살을 더 먹는다.
김민서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허인무가 감독과 각색을 했다. 소설은 안 읽었으니,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의 특징은 놀랄 정도의 피상성이다. 주제, 갈등, 인물, 감정, 이야기는 모두 필름에 투명하게 코팅을 해놓은 듯하다. 보이지 않게 지나가더니 스크린 밖으로 좌르르 빠져나간다. 이 점에 있어서만은 일관성을 보였다.
뚫고 들어가려고만 했다면, 영화 속에서 이야깃거리는 많다. 유민의 막내 방송작가 생활과 비정규직 친구 이야기, 혜지의 무도장 캐스팅과 동영상 유출, 수진의 학력위조와 아버지의 부도, 민희와 돈 많은 부모와의 관계, 여성의 성과 임신 등이다.
각각의 설정은 최근 사회에서 민감했던 문제들을 떠오르게 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방송작가의 자살은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연예계 동영상 유출 사건은 여러 번 반복됐다. 학력위조라면 최근 단연 신정아 사건이다. 돈만 많은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못 돌보는 것도 사회면에 적잖이 오르내린다. 여성의 성과 임신이라면 여성 영화의 단골 주제다. 그러나 감독은 이 중에서 무엇 하나도 잡지 않는다. 아니, 제대로 늘어놓지도 못한다. 게다가 영화에 무도장, 고급 바, 스파, 명품을 잔뜩 집어넣는다. 그 결과 영화에서 사라진 것은 일과 고민이며, 남은 것은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사치나 엄살로 보이게 하는 이질감이다.
'어쩌다 이렇게 겉껍질만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관람 후 머리 속을 맴돈 질문은 이것뿐이었다. 비싼 의복과 호사스런 장소, 공감 곤란, 피상성, 이런 영화 특징을 나열하다 떠오른 인물이 이 글의 도입부에 언급한 앙지외다.
앙지외가 보기에 어떤 사람들은 피부자아 겉에 상징적 피부를 시멘트처럼 덧칠해서 피부자아를 이중화한다. 덧칠하는 것들은 화장, 헤어스타일, 의복 등이다. 예들 들어, 패션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입는 화려한 옷과 유사하다. 스포트라이트와 옷의 광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그런데 외관을 통해 자아를 두 겹으로 강화하는 이유는 실은 자아가 허약해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옷이나 소지품과 같은 외관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는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것이 희귀하고 비쌀수록 자신이 특별한 자격을 타고났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외양에 집착하는 피상성은 알맹이가 빠진 허약한 자기애의 발로다.
등장인물들은 각각 그리고 영화는 필름 전체가 덧칠한 시멘트, 가짜 피부 속에 갇혀있다.그러니 영화가 공감되고 소통이 될 리 없다. 허약한 자기애에 빠진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 밖에서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는 자신에게 되돌아올 부메랑 대사를 계속 던진다. 예를 들어, 수진이 유민에게 던지는 "넌 뭐든지 대충 뭐뭐쯤, 흉내만 내다 말고, 상황 따라 카멜레온처럼, 진짜 니가 없지." 같은 대사는 대표적이다. 된장녀 소리를 듣고 싶은 건지, 혹은 된장녀 대접을 받고 싶은 건지, 영화의 정체가 궁금하다.
또한 사건의 연결 고리들을 주로 핸드폰 문자로 처리하거나 독백, 혹은 앞뒤 없는 대사 한두 마디로 처리하는 것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넣어서 말로 프리젠테이션하는 도구는 영화 말고도 효율적인 것들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파워포인트나 프레지 등의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도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앙리외도 언급했듯이, 자신의 옷과 외양, 다닐 장소를 선택하는 일은 피부자아의 사회적 기초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서 개인이 사회집단에 소속된다. 이것을 다른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정체성이라고 한다. 개인 사례에 치중했던 앙리외는 피부자아의 사회적 등록을 부모-자식 관계에서 찾았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에 뿌리를 둔 경제 심리학은 사람들이 정체성을 상당 부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UC버클리 대학의 조지 애커로프 교수에 의하면, 정체성의 선택은 개인이 내리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결정일 수도 있다. 개인이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노동, 소비, 투자 형태가 바뀐다는 의미다. 그런데 소비시장이 준비 없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아직 노동시장에는 제대로 들어서지도 못한 의 젊은 주인공들이, 소비 취향은 비버리 힐스 부촌 급이라니, 그녀들의 사회적 경제적 정체성이 어느 곳에서 헤매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피부자아에 아무리 다른 것을 더 씌워봐도, 덧댄 것이 벗겨지면 절제 없는 욕망은 약한 자아를 파괴하는 어두운 동력일 뿐이다.